‘세계영화기행’ 등 스타 다큐 PD 출신
뮤지컬 영화 제작 중단에 충격
뇌졸중 쓰러진 후 바닥의 삶 경험
“다큐 영역 넓히려 애니 등 버무려”
좌절하면서도 일어나는 모습들
엔딩크레딧 오를 땐 무한희망이…
서울 광화문 앞 해태상이 갑자기 꿈틀거린다. 까까머리 중년 남자가 한 소녀와 함께 해태상을 타고 하늘을 난다. 뚱딴지 같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이어서 카메라는 남자가 경복궁을 거니는 모습을 담는다. 경복궁 후원 벽에 새겨진 부조에서 십장생들이 튀어나와 춤을 추듯 사내 주변을 맴돈다. 의문이 깊어진다. 이후 남자는 아버지 무덤을 찾아 흐느낀다. “무섭다”고.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이 영화의 정체가 궁금할 수 밖에.
영화는 서울 종로구 행촌동의 근대건축물 ‘딜쿠샤’로 곧 장소를 옮긴다. 가난한 자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선 중년의 여인이 흥얼거리며 카메라를 맞는다. 음반까지 내놓은 어엿한 가수지만 무명이다. 그 동안 벌어들인 음원 수입은 57원. 관객은 곧 알아차리게 된다. 이 영화가 성공시대를 누리는 주류의 이야기가 아님을.
상반기 개봉 예정인 ‘58년 개띠 딜쿠샤의 꿈’은 비주류의 삶을 다룬 영화다. 주연을 겸한 김태영(58) 감독부터 주류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1990년대 방송가를 풍미했던 그이지만 지금은 쓰라린 실패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설립한 인디컴미디어는 방송 다큐멘터리로 명성이 높았다. 수교 전 베트남의 모습을 그린 ‘베트남전쟁, 그 후 17년’(1993)으로 백상예술대상 TV비극부문상을 수상했고, 쿠바의 현실을 담은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로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을 받았다. 95년 선보인 ‘세계영화기행’ 시리즈는 당시 영화학도들의 환호를 이끌었다. 김 감독이 연출한 방송다큐멘터리만 70편. 98년 한 신문은 그의 활약을 ‘다큐 정상 정복한 문화독립군’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2003년 뮤지컬영화 ‘미스터 레이디’의 제작이 중단된 충격으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악전고투다. 빚에 시달리고, 몸은 장애 3급이다. 영화는 그런 그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담으면서도 희망을 노래한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만난 김 감독은 “(절망에 빠지려는)내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이웃에 선물하겠다는 기분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와 허구를 버무린 영화는 김 감독과 주변 인물들의 일상에 초점을 둔다. 무명가수 억순이를 비롯해 하나 같이 비주류다. 1980년대 그룹 영싸운드의 드러머로 활약했던 김만식, 간암으로 세상을 뜬 ‘미스터 레이디’의 조명남 감독, 촉망 받는 배우였다가 시력을 잃은 연극연출가 등이 등장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김 감독이 밀린 월세 때문에 집 주인과 승강이 벌이는 장면, 김 감독이 사채업자의 협박을 받는 모습 등이 재현드라마 형식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울한 정서가 화면을 지배하지 않는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도 일어서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사연으로 화면은 밝다. 때론 엉뚱한 웃음을 선사하고 때론 흐뭇한 판타지를 안겨준다. 엔딩크레딧이 오를 무렵이면 생에 대한 절망은커녕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김 감독은 “제작에 들어가기 전 우울하게 만들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며 “다큐멘터리의 영역을 넓히고 싶어 애니메이션 등 여러 요소를 더했다”고 말했다.
2013년부터 제작에 들어갔는데 후반작업 중이던 2014년 여름 월세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그는 “보증금이 없어 고시원에서 생활했다”며 “내 인생도 이렇게 끝나나 하는 자괴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잠이 오지 않아 매일 새벽 1시쯤 사무실로 나가 영화를 다듬었는데 (불면증이)영화 완성도에 결국 도움을 줬다”고 한다.
영화는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미스터 레이디’ 주연 안성기가 영화를 보고 호평과 함께 축하를 해줬다. 김 감독은 “영화 속에 ‘미스터 레이디’에서 노래하는 안 선배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안 선배도 처음 보는 영상이라 깜짝 놀라더라”며 “영화 상영 뒤 3일이 지나 안 선배가 후원금 1,000만원을 보내 눈물 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돈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추가 촬영할 수 있었다”며 “나머지 500만원을 보증금으로 원룸을 구해 고시원을 탈출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예대 후배인 배우 조선묵은 영화 속에서 김 감독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형 우리는 이제 꿈꿀 나이가 아니야.” 김 감독은 기자에게 말했다. “영화라는 꿈을 꾸지 못하면 난 벌써 죽은 인생”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계속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고교 때 가출해 옷 장사, 다방 DJ 등 안 해본 게 없어요. 독립영화 ‘황무지’(1988)로 쫄딱 망해서 먹고 살려고 다큐멘터리에 입문했어요. 몇 번씩 삶의 위기를 겪었으나 항상 잘 됐어요. 제가 (10여년 전) 쓰러진 것도 너무 빨리 가니까, 좀 느리게 움직이라는 뜻 아닐까요?”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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