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계 대표적인 극작가 겸 연출가 김광림(64), 각종 드라마에 감초처럼 등장하며 ‘대세 중년’으로 떠오른 이대연(52). 1992년 연극 ‘당신의 침묵’에서 무대감독과 배우로 만난 두 사람은 94년 ‘사랑을 찾아서’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호흡을 맞췄다. 당시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안주 삼아 회자되던 찰나, 옆자리에 앉은 이대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김광림이 무릎을 쳤다. “이거야 이거!” 1년의 취재, 6개월의 집필, 20년의 영광.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연극 ‘날 보러 와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96년 초연과 함께 백상예술대상 희곡상(김광림), 신인상(이대연) 등 그 해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날 보러 와요’가 초연 20주년을 맞아 22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재공연된다. 원작자인 김광림이 10년 만에 연출을 맡고, 류태호ㆍ유연수ㆍ김뢰하 등 초연 멤버들이 합류한다. ‘용의자 1’의 친구로 단 5분 출연하고 신인상을 거머쥔 이대연은 이번에 김 반장으로 ‘진급’했다. 초연 배우들이 주축이 된 OB팀에 맞서, 신인 배우가 출연하는 YB팀은 변정주가 연출을 맡아 두 가지 버전의 공연을 선보인다.
4일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김광림 연출가, 이대연 배우는 “10년만에 대본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입을 모았다. “2006년 초연 10주년 기념공연하고 그때 그 배우들이 다 ‘해체’했거든요. 다시 만나니…. 연기가 엄청 좋아졌죠(웃음). 내 입으로 이런 얘기하기 그렇지만.”(김광림) “2003년까지 용의자 친구 역만 하다 이번엔 김 반장 역이라 신작을 준비하는 것 같아요. 다들 펄펄 나는 배우들이라 혼자 고생 좀 하고 있죠.”(이대연)
김 연출이 20여년 전 술자리에서 이대연을 보고 무릎을 친 이유는 “억울하게 생겨서”란다. “당시 별별 사람들이 다 용의자로 지목됐어요. 형사들도 답답했겠지만 조사받는 사람들도 얼마나 억울하겠나, 얘 얼굴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20년 전 희곡이지만 ‘역시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김 연출은 “부분…. 부분적으로”라며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화성과 서울을 오가는 1년여의 취재에 극단 연우무대 배우들과 스태프 10여명이 함께 했다. 용의자 역 1순위였던 이대연도 당연히 동참. “이틀씩 날 잡아 답사하고, 형사 인터뷰하고, 이렇게 만든 자료를 공유하며 공부했죠. 물론 작품은 연출이 쓰셨지만, 이런 과정이 배우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이대연)
이렇게 고생해놓고 고작 5분짜리 단역이라니, ‘왜 그랬냐?’는 질문에 김 연출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눙을 친다. “극단에서 짬밥이 낮았다”는, 한참 만에 꺼낸 김 연출가의 변명에 이대연이 “그래도 연수나 뢰하보다 선배”라고 맞받는다.
작품은 초연 첫날부터 입소문을 탔고, 그 해 앙코르공연만 2번을 가지며 매진행렬을 이어갔다. “당시 극장 만석이 되면 제작자가 전 스태프들에게 1,000원씩 보너스를 줬거든요. 하도 공연 잘되니까 끊기지 않고 계속 매진되면 하루에 1,000원씩 올려주기로 했는데, 6,000원까지 오르니 제작자가 남는 거 없다며 손들더라고요.”(이대연)
20년이 지나도 이 작품을 만들고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은 ‘리얼리티의 힘’이라고 합창했다.“배우, 스태프가 같이 고민하고 머리 쥐어짜 만든 작품을 관객이 보면서 공감할 때, 우리 생각이 맞았구나 하는 희열을 느껴요.”(이대연) “탄탄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리얼리티와 희비극이 세월을 더해가며 다져졌어요. 여전히 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김광림) 02-391-8223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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