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진 한 장 찍기 위해
1000여명씩 도열한 채 대기
귀빈들만 자리 옮기며 촬영
한 장의 기념사진을 위해 1,000명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선다. 그 옆에선 또 다른 1,000명이 도열한 채 대기하고 있다. 귀빈들은 무리 맨 앞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한 뒤 옆의 1,000명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촬영이 끝나면 또 다시 옆으로…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의 기념사진 촬영 방식이다.
김정은이 북한군 최고계급인 원수 칭호를 얻은 2012년 7월 이후 약 40개월 동안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사진들에 거짓말 같은 1,000명 단위 기념사진의 비결이 숨겨져 있다. 우선 대규모 기념촬영을 위한 임시 스탠드가 설치돼 있다. 넓이 150㎝ 높이 40㎝ 정도의 계단식 구조물을 인원수에 맞게 옆으로 붙여 세우고 위로 또 쌓는다. 그리곤 각 계단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선다. 5m 이상 되는 높이에 서 있기 조차 힘들만큼 좁은 발판 위에서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한꺼번에 앞으로 쏠릴 경우 우려되는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는 김정은 자리 바로 뒤편 스탠드의 작은 난간이 전부다. 전방 군부대나 섬 지역 등 현장지도 중 찍은 기념사진마다 같은 종류와 규격의 스탠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기념사진을 위해 이를 수송하고 설치하는 등 적지 않은 수고를 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m짜리 임시 스탠드 위 환호하는 군중 ‘위태위태’
기념사진 찍으며 민심장악
기네스북 기록으로나 존재할 법한 희귀한 광경이지만 북한에서 이보다 영광스러운 순간은 없다. 김씨 삼부자가 등장하는 사진을 일명 ‘1호 사진’이라 부르며 신성시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은 평생의 소원이자 가문의 자랑이다. 김정은은 일반 노동자나 하급군인 등과 함께 격의 없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민심을 장악해가고 있다. 일종의 포상이나 마찬가지인 김정은과의 기념사진은 단 둘이 오붓하게 찍는 경우부터 10,000여명이 함께 찍는 어마어마한 규모까지 다양하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김정은은 1만여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인원과 한꺼번에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으니 그야말로 찍는데 의미가 있을 뿐이지만 기념사진에 대한 김정은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각에선 5월 열리는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의 생일인 1월 8일이 북한의 명절로 지정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권력 세습에 이어 3대째 신격화를 향해 치닫는 김정은의 기념사진 정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주목된다.
金, 한 달에 10여곳 현장지도
군부대 위주서 공장 등 경제현장 늘어
지난 40개월여 동안 보도된 조선중앙통신 사진을 분석해 보면 김정은은 약 400곳 이상을 시찰했다. 집권 초기였던 2013년 상반기까지 군부대 격려 방문에 치중했던 김정은은 같은 해 하반기부터는 각종 건설공사 현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그 후 시찰 분야가 점차 다양해지면서 최근에는 생필품 공장이나 수산물 관련 가공시설, 정밀 기계 공장 등 경제관련 현장을 자주 찾았다. 한 번 다녀온 곳을 불과 몇 개월 만에 다시 찾는 꼼꼼함도 보였는데, 2013년 말 완공된 강원도 마식령 스키장의 경우 7개월 동안 5차례나 현장을 찾아 공정을 챙겼는가 하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서해 최전방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 역시 6개월 만에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체형, 통통 → 육중한 몸매
표정, 진지 → 호탕한 웃음
권력이양 진행되며 여유로워져
2014년 여름부턴 반소매 즐겨
북한 김정은은 자신이 등장한 사진을 정치 수단으로 맘껏 이용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이지만 카메라 앞에선 하나의 피사체에 불과하다. 피사체로서 김정은이 사진에 남긴 흔적들을 통해 그간 변화해 온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집권 초기이자 아직 내정이 불안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2013년까지 김정은은 당 공식 회의 석상은 물론 현지지도 중에도 밝은 모습보다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과 자세를 보였다. 카메라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까닭에 전신 사진이 많았다. 그 후 권력이양 작업이 속속 진행되면서 김정은의 표정은 자연스럽고 여유로워졌다. 지난해 현지지도 사진 속에서 김정은은 대부분 호탕한 웃음에 적극적인 몸짓을 보였고 카메라와의 거리도 가까워지면서 사진의 화각이 넓어지고 전신보다 상반신이나 무릎 위를 찍은 사진이 자주 등장했다. 사진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역시 체형이다. 2012년만 해도 배가 약간 나와 통통한 정도였던 몸매는 갈수록 불어나 2014년 가을 건강이상설이 나돌더니 현재는 체중을 130kg 정도로 추정할 만큼 육중해졌다.
패션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일단 체중이 불면서 바지 통이 점점 넓어졌다. 김정은은 2013년 단 한 차례 반소매 윗옷을 입었을 뿐 1년 내내 검은색 내지 진한 회색이나 군청색 등 어두운 색상의 긴 소매 인민복을 고집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여름에 흰색 반소매 상의를 15차례 이상 입는 등 보다 편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선택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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