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나서면 남편이 따른다,’ 전통적 의미로 보면 거꾸로 된 ‘부창부수’(婦唱夫隨)가 미 대선에서 실현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지원을 위한 단독 유세에 나선 것.
클린턴 전 대통령은 4일 뉴햄프셔 주 내슈어 지역대학에서 열린 유세를 통해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힐러리 만한 지식과 경륜, 자질을 갖춘 대통령 후보는 없다고 믿는다”며 아내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그 동안 대선 후보로 나선 부인에 대한 선거전략 자문과 사적 자금모금 활동에만 관여해온 클린턴 전 대통령이 단독으로 공개 유세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힐러리의 능력은 공통의 번영을 위해 가장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국경이 벽보다는 거미줄처럼 보이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누구도 완벽하게 통제력을 가질 수 없지만, 힐러리는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힐러리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이란 핵 협상에 참여시키는 등의 업적을 쌓은 것을 거론하면서 “나는 힐러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며 농담조로 말했다.
또 45년 전 예일대 로스쿨에서 처음 만났던 시절을 소개하면서 아내의 ‘사람됨’을 강조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가난한 자들에게 법률적 구조를 해주려 했던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부인과 본선에서 맞서게 될 공화당 대선 주자들을 견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해 대통령 선거는 약간 무섭다”며 “후보들이 말하는 것이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실제로 그런 약속들을 이행한 기록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후보들의 정책 공약이 비현실적이라는 걸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을 다시 거론하며 자신을 겨냥해 공세를 펴는 트럼프와 정면으로 각을 세우지는 않았다.
미 언론은 올해 69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노타이에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나와 과거의 화려한 달변 대신 차분한 어조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기여했다고 긍정 평가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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