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이 나오는 영화, TV 프로그램이 좋다. 아니 좋아했다. 극장에서 본 생애 첫 영화는 개가 주인공인 ‘벤지’였고, 일요일 아침이면 ‘TV 동물농장’을 챙겨봤다. 화면 속 동물들은 행복해 보였고, 행복해 보이는 동물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화면 뒤 동물들의 삶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게 된 지금은 화면 속 동물들을 마냥 행복하게만 볼 수 없다.
지난 며칠 간 온라인은 tvn의 예능프로그램‘삼시세끼’에 출연했던 개의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찾아간 곳에서 만난 출연 동물의 모습이 방치된 것 같다는 글에 제작진을 비난하는 글과 시골 개는 워낙 그렇게 키운다는 글이 맞섰다. 동물은 예능 프로그램의 소품으로 완벽하다. 존재 자체로 방송의 ‘귀여움, 사랑스러움’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면 소품 창고 구석의 다른 소품들처럼 잊히기 쉽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료된 프로그램의 동물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서 희망이 느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사람들은 동물이 화면 뒤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훈련을 받고, 촬영장에서 대기 시간은 얼마나 길며,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촬영이 끝나고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 몰랐다. 하지만 동물을 등장시키는 매체가 많아지면서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온 올빼미의 소유주는 17가지 동물학대 혐의로 2009년 기소되었고, 영화 ‘혹성탈출’에 나온 침팬지 첩스는 썩은 음식과 배설물로 가득 찬 우리에서 살다가 2003년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발견되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출연한 동물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동물이 등장한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동물에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는데 이는 동물단체가 동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라고 요구한 덕분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촬영 현장에만 해당되기에 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제작 준비 단계에서의 동물학대는 감시할 수 없다. 실제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 나오는 호랑이를 비롯해 수많은 동물을 훈련시킨 유명 훈련사가 호랑이의 얼굴에 수많은 채찍을 가하면서 훈련시키는 끔찍한 영상이 최근 공개되기도 했다.
각종 매체에 동물을 공급하는 미국의 가장 큰 동물공급업체의 조련사로 일했던 사라 배클러는 “그곳에서 동물 학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어났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아기 침팬지를 발로 차고 막대기로 때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동물을 가두고 습성에 맞지 않는 행동을 훈련시키려면 폭력과 배고픔을 이용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헝가리 영화 ‘화이트갓’ 감독은 출연하는 250마리의 개를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와서 전문 훈련사를 통해 6개월간 훈련시켰다. 개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촬영은 천천히 진행되었고, 주연 동물 연기자는 대역이 있어서 혹사당하지 않았고, 촬영을 마친 후 250마리 모두를 입양 보냈다.
최근 새로운 TV 동물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다. 연예인이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남의 반려동물을 잠시 돌보는 내용이다. 동물이라는 소재만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한 것 같은데 벌써부터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부디 영화 ‘트루먼쇼’에서처럼 방송 중에는 함께 웃고 우는 충성 시청자였다가 프로가 끝나자마자 망설임 없이 채널을 돌리지 말고 제작 과정, 종영 후 정황까지 매의 눈으로 동물의 안녕을 챙기는 동물의 든든한 지지자인 시청자가 되면 좋겠다.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
참고한 책: 동물 쇼의 웃음, 쇼 동물의 눈물, 책공장더불어, 로브 레이들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