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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기적으로 살자

입력
2016.01.0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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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후배가 문자를 보냈다. 돈을 좀 부쳐달란다. 일주일 동안 일한 임금도 못 받고 잠 잘 때도 없이 사흘을 굶었단다. 이빨도 깨졌단다. 그날은 날도 찼다. 얼마의 돈을 보냈다. 이번이 세 번째다. 그치는 매번 돈을 꿔달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돈 거래를 할 생각이 없다. 인연으로 치면 26년 전, 군 생활이 전부다.

동영상을 봤다. 양팔 없는 거지가 구걸이 끝나고 멀쩡하게 팔을 빼는 장면. 이러니 누군들 거지에게 적선을 하랴. 두 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그 거지는 승객이 다 있는 곳에서 버젓이 팔을 빼었다. 거지의 속생각이 궁금했다. 왜 하필 모두 있는 곳에서 팔을 뺐을까. 경우의 수는 두 가지. 하나는 아무도 적선을 하지 않아서 홧김에 팔을 빼는 경우. 그래 나 멀쩡하다. 됐냐. 두 번째는 그 객차 안에서 걷을 돈이 다 걷힌 경우. 더 이상 나올 게 없으니 들켜도 된다. 됐다. 이러든 저러든 거지들 욕 먹이기 딱 좋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적선을 했던 사람이라면 크게 실망했을 거다. 적선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안 주기를 잘했다며 안도했을 거다. 그러나 양쪽 다가 앞으로는 적선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적선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냉정하게 걸인의 상태를 따져본 후에나 할 것이다. 과연 선업을 쌓는 의미로써의 적선이 될까.

생각해 보자. 그가 성하든 성하지 않든, 명동의 거지가 휴일에 외제차를 타든 타지 않든 상관이 없다. 그는 그저 거지일 따름이다. 손을 벌리고 차가운 돌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연민을 구걸하는 그 순간, 그는 분명한 거지다. 우리는 결코 속지 않았다. 그 거지도 우리를 속였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다만 적선을 하는 순간이면 된다. 그것으로 관계는 빠르게 끝난다. 다음은 하늘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내가 손해를 본 것도 거지가 이익을 챙긴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적선을 한 것이다. 거지는 다만 구걸을 해서 돈을 번 것이다. 거기서 끝. 나를 돌보는 일이 먼저다. 나는 선업을 쌓았으니 됐다. 남이야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적선은 나를 위해서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거지같은 사람들 꽤 많다. 사기꾼도 많고, 겉만 번지르르 해서 속으로는 못된 생각이 가득한,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 숱하다. 선량한 대다수는 그 모습에 가슴을 치며 분을 삭인다. 그 거지들은 떵떵거리며 잘도 지낸다. 아니다. 그들은 잘 살지 못한다. 우리가 겉에서 보는 것처럼 결코 행복하지 않다. 아니다. 정말 나빠서 아무런 죄의식조차 없이 기고만장하여 사는 못된 인간들, 당연히 있다. 열통이 왜 안 터지랴. 그래도 더 볼 것 없다. 먼저 나부터 챙겨야 한다. 낙담했을 나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하는 게 먼저다. 그 다음에 분노해도 늦지 않다. 물론! 안 하면 건강에는 더 좋다.

금수저네 흙수저네 하는 이상한 말 재미에 이 나라가 푹 빠졌다. 삼포세대니, 헬조선이니 하는 말로 우리나라는 문제투성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말을 즐겨 써서 내가 얻을 이익은 무엇인가. 남이 금수저로 밥을 먹든 말든 그래야 밥 한 그릇이고 어차피 변소가기는 마찬가지다. 도자기 숟갈이라면 몰라도 흙수저는 없지 않은가. 왜 자신을 먼저 부정의 늪으로 내모나.

종종 배우들에게 이기적이 되라고 말한다. 내 경험상 모두가 이기적일 때 비로소 이타적이 되었던 것 같다. 연극의 목표는 당연히 이타적이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자기애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되려 모두에게 좋은 일이 많아진다. 이타적인 인간, 희생하는 인간이라는 말은 언뜻 보면 매력적이지만 실제는 교묘한 경우가 많다. 대의를 위해 남을 바로잡겠다는 말, 어불성설이다.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거룩함 자체가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새해다. 자기부터 챙기자. 속이 상할 때는 기꺼이 적선한 셈 치자. 기왕 벌어진 일들로 남 탓하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나 짧다.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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