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에 이른 두 남자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한 사람은 은퇴를 선언한 유명 지휘자겸 작곡가이고 또 한 사람은 명망 있는 영화감독이다. 둘 사이 교양미와 예술의 향기가 어린 말들만 오가리라는 예감은 착각이다. 그들의 대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바로 이런 식. “자네 어제는 소변을 잘 봤나?” “네 방울 정도 나왔어.” “나도 비슷해.” “정말? 나보다 많아 적어?” “사실은 자네보다 적네.”
그렇다고 노년의 삶에 깃든 어둠을 애써 부각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탈리아ㆍ영국 합작영화 ‘유스’ (Youthㆍ젊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인생을 사는 노인들의 일상을 통해 삶이 지닌 비의를 탐색한다. 육체의 노화에 시달리면서도 생을 바르게 조망할 수 있는 노년의 삶을 그려낸다.
지휘자 겸 작곡가인 프레드(마이클 케인)는 은퇴 뒤 스위스 고급 호텔에서 휴가를 보낸다. 오랜 친구이자 사돈인 영화감독 믹(하비 케이텔)은 같은 곳에 머물며 유작이 될지 모를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프레드가 영국여왕의 공연 요청마저도 손사래를 치는 반면 믹은 창작 의욕을 여전히 불태운다. 하지만 둘은 지난 시절에 대한 회한을 공통분모로 지녔다. “엄청 노력했던 일이 지금 별로”라고 공감하거나 “(젊은 시절) 경솔함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라고 통찰한다. 영화는 두 친구의 대화와 엇갈린 행보를 렌즈 삼아 노년의 삶을 다각도로 들여다 본다.
영화는 종종 역설적인 장면을 들이민다. 지극히 인위적인 행위인 작곡에 평생을 매달렸던 프레드는 젖소 목에 달린 종과 바람 소리에서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화음을 발견한다. 남편의 버림을 받는 프레드의 딸 레나(레이첼 와이즈)는 아버지의 무신경한 발언 덕분에 오히려 새 삶을 찾아간다. 프레드는 믹이 맞이한 비극을 목도하며 삶의 태도를 바꾼다.
영화 속에는 유명 축구선수 마라도나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라운드를 누비며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는 이제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스모선수의 외모를 지녔다. 그는 어느 날 호텔에서 눈에 띈 테니스공으로 옛 영화를 홀로 되살려본다. 낑낑거리며 공을 몇 번이고 높이 올려 차는 그의 모습에서 회춘에 대한 덧없는 욕망이 읽힌다. 생물학적 젊음에 집착하기보다 지금의 삶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가면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반어적 조언으로 해석된다.
40대 중반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연출력이 원숙미를 풍긴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과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던 그의 전작 ‘그레이트 뷰티’ 못지않게 수려한 영상과 영롱한 음악을 선사한다. 탐미적인 만듦새만으로도 갈채 받을 영화다. 마지막 장면 조수미의 열창은 덤이다. 7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