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자동차 매장이 밀집한 중국 베이징(北京) 차오양구(朝?區) 라이광잉에 들어서자 전면이 유리로 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 토종 업체 비야디(BYD)가 메르세데스-벤츠가 속한 다임러 그룹과 합자법인을 설립해 만든 전기자동차 ‘덴자(DENZA)’를 판매하는 매장이다.
다임러의 차체 기술에 BYD의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결합한 5인승 덴자 기본형 모델의 가격은 정부 보조금을 받아도 26만1,000위안(약 4,680만원)이다. 하지만 1회 충전으로 최대 300㎞를 달릴 수 있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들의 최대 주행거리가 15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수준이다. 매장 관계자는 “아직 물량이 많지 않아 계약하고 20일은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근 베이징자동차(BAIC)의 전기차 전용 매장 앞에도 구매자들에게 인도 예정인 전기차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EV160은 시속 60㎞ 정속주행 시 1회 충전으로 최대 190㎞, EV200은 245㎞ 주행이 가능하다. 매장 창구에서 구입 상담을 마친 왕모씨는 “원래 가솔린 차를 갖고 있지만 베이징에서 실시하는 홀짝제에 걸리지 않으려고 전기차 추가 구입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전기차 대국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내연기관(엔진) 시대에 자동차 후진국이었던 중국은 엔진 기술이 필요 없는 전기차 산업의 패권을 쥐려는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판매량으로는 이미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올라섰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19만6,604대로 세계 1위인 미국의 지난해 예상 판매량 18만여대를 가볍게 넘어섰다. 중국의 지난해 연간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무려 290% 증가한 22만대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판매량이 늘면 출시 모델이 늘고, 인프라 확대와 함께 업체 간 경쟁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에 한발 먼저 다가선 셈이다.
게다가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글로벌 업체가 아니라 BYD 같은 중국 토종 업체들이다. 최근 8개 토종 전기차 업체의 차를 한 곳에서 판매하는 양판점 형태의 매장 설립까지 추진되고 있다. 반면 친환경차 시장 세계 4위인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수익성을 따지다 아직까지 중국 시장에 전기차를 한 종도 출시하지 못했다.
중국은 전기차 인프라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신축 건물에 충전시설 설치를 의무화했고 지방정부들은 등록세와 주차비 면제, 보험료 지원 등 혜택을 내세워 전기차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중앙과 지방정부 보조금을 합쳐 최대 10만8,000위안(약 1,900만원)이 지원된다. 지난해 서울에서 일반 시민이 전기차 구입 시 받은 보조금(1,650만원)보다 더 많다.
특히 공해가 극심한 베이징에서 전기차의 인기는 대단하다. 이미 베이징 시내 곳곳에 충전기 수천 개가 들어섰다. 전기차는 신차 구매제한(연간 15만대)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엄격한 차량 통행제한에도 걸리지 않아 기존 차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 대 더 구입하는 세컨드 카로 제격이다. 전기차들은 지난해 9월 전승절 열병식을 앞두고 시행된 20여 일간의 엄격한 홀짝제 시행 때도 시내를 자유롭게 누비며 진가를 발휘했다. 중국 현대차경영연구소 이동헌 소장은 “화웨이나 샤오미의 휴대폰처럼 전기차를 비롯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기술력이 확실히 좋아졌다”며 “눈에 보이는 부분은 글로벌 업체들을 거의 다 따라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징=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