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계 총수들의 신년사는 ‘위기 극복’과 ‘생존’으로 집약된다. 전세계적 불황 속에 현재의 경영 환경을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4일 일제히 시무식을 가진 주요 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은 “변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없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신년사에 공통적으로 담았다.
삼성은 올해 별도의 신년사 대신 계열사별 시무식을 통해 미래 먹거리 사업을 발굴하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주요 계열사 경영진과 잇따라 간담회를 갖고 올해 목표와 전략을 점검한다. 이에 따라 그는 5일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생명, 삼성화재 CEO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 공유경제 등 혁신 사업모델이 하드웨어의 가치를 약화시키고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위주로 경쟁의 판을 바꾸고 있다”며 “새로운 경쟁의 판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내연녀와 혼외 자녀 등 개인적인 속사정을 고백해 논란을 일으켰던 최태원 SK 회장은 이날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그룹 신년회에 참석했다. 1주일만에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계열사 CEO와 임원들에게 “패기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야 한다”며 “서로에게, 그리고 시장에 솔직할 때 소통 비용이 줄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만큼 솔직함과 신뢰의 기업문화를 확산시키겠다”고 말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전자, 화학 등 주력산업이 신흥국의 도전을 받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고, 혁신기업들은 이전과 다른 사업 방식으로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하고 있다”며 “안일하게 대처하면 살아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자동차 부품과 신에너지 분야처럼 성장 가능성 있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 남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강도 경영쇄신 작업을 진행중인 포스코의 권오준 회장은 수익성 확보를 위한 구조혁신을 강조했다. 권 회장은 “지금까지 재무구조 개선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했다면 올해는 수익성 관점에서 숨어 있는 잠재 부실까지 제거하는 철저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9개 계열사를 정리한 포스코는 올해 35개사를 매각ㆍ청산할 방침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 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 수익을 내는 기업이 되기 위해 원가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부단하게 혁신해야 한다”며 “수익성 확보와 미래 먹거리 발굴에 힘써달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작은 구멍 하나에 거대한 배가 침몰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모두 긴장감을 높이고 환율, 금리, 유가 등 대외 변동성을 예의주시해 예상되는 위험을 미리 차단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유동성 위기 이후 6년만에 금호산업 경영권을 되찾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기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이윤 뿐”이라며 “이윤 극대화를 통해 올해 영업이익 목표를 기필코 달성하자”고 강조했다. 지난해 수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과 대우조선해양 정성립 사장도 나란히 올해의 최우선 과제로 “흑자 달성”을 강조했다.
올해의 화두로 ‘행복’을 정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소통은 서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뢰를 쌓는 것”이라며 “전 임직원이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문화를 만들자”고 말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올해 중국과 미국에서 본격 가맹사업을 추진해 해외 사업을 한단계 도약시키겠다”며 2030년까지 매출 20조원, 전세계 1만2,000개 매장을 운영하는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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