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로 여성 위협하다 도주 후 잡혀
세월호ㆍ메르스 여파로 사업체 부도
암투병 노모 등 사연 알려지자 온정
“범죄자를 왜 돕는지…” 의문 제기도
사업 실패로 끼니를 굶는 형편에 처하자 어설픈 강도 행각을 벌여 구속된 50대 남성에게 시민들의 온정이 쏟아지고 있다. 범죄행위와 온정은 구분해야 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모(53)씨는 지난해 7월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주차장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돈을 빼앗으려다 몸싸움에서 밀리자 달아났다. 이틀 동안 물로 배를 채워 힘이 없던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흉기마저 현장에 떨어뜨렸다. 며칠 뒤 이씨는 경기 문산의 한 컨테이너에 숨어 있다 강남경찰서 수사팀에 바로 검거됐다.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이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씨의 딱한 사정은 당시에도 화제가 됐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가 연매출 100억원에 이르는 건축 자재 업체를 운영하다 세월호 참사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의 직격탄을 연이어 맞고 부도로 빚더미에 올라 앉은 사실이 알려졌다. 설상가상 이씨의 80대 노모는 암투병 중이었고 두 자녀도 각각 고교 3학년, 1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현대판 장발장’의 사연이 온라인을 타고 퍼지면서 이씨를 돕고 싶다는 시민들의 문의 전화가 언론사와 강남서에 빗발쳤다. 자신도 사업 실패를 겪고 재기했다는 한 남성은 500만원을 쾌척했고, 한 중년 남성은 수사팀에 30만원이 담긴 봉투를 놓고 가기도 했다. 각종 생필품을 이씨 집에 전달한 마트 주인과, 저 멀리 이국 땅에서 도울 방법을 찾는 중국동포의 성원도 이어졌다. 이렇게 이름 모를 독지가 80여명이 십시일반 모은 2,000여만원으로 이씨의 두 자녀는 학비 걱정을 덜게 됐다.
시민들의 온정을 체험한 이씨는 구치소에서 참회와 새로운 인생각오를 담은 편지 한 통을 수사팀 앞으로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출소 뒤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연초 전해진 훈훈한 소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며 시민의 힘을 칭송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일부는 “흉기를 들 힘이 있었다면 자칫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던 범죄”라며 범죄자를 옹호하는 여론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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