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개혁을 목표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한 것이 작년 이 무렵이었으니 벌써 1년의 세월이 지났다. 타협에 이르기까지 곡절도 많았고, 결과에 대한 해석 차이도 여전하지만 우리 노동시장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노사정간 통합적 해법이 모색되었던 점은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의미를 되새겨 의의를 확인하고 내일을 설계할 시점에 놓여있는 장애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새해가 밝았어도 우리는 현실의 무게에 눌려 한 걸음 옮기기 힘든 사정이다.
무엇보다 걱정은 고용불안이다. 2015년은 구조조정의 해였다. 조선, 기계, 건설, 금융, 통신 및 석유화학 등 핵심 산업 대부분이 다운사이징 대상이었고, 그 규모는 어림잡아도 1만 명을 넘었다. 저유가와 저성장에 따른 경기불황 그리고 60세 정년 제도화가 주요 원인으로 짐작되지만 사정은 기업마다 다양하다. 중고령 근로자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기업의 경우 젊은 층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예정된 기업간 인수합병, 부실기업 매각 및 청산 등의 계획을 고려하면 2016년에도 구조조정이 지속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작년 한 해 대부분 기업들이 선택한 인력 조정의 방법은 명예퇴직이었다. 사전은 명예퇴직을 ‘정년 이전의 근로자가 징계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신청하여 퇴직하는 일’로 정의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우회해 노사간 다툼 없이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명예’라는 수식이 붙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명예퇴직을 선택하는 이유는 정리해고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며, 근로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나갈 것 돈이라도 더 받자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의 구조조정은 그 규모와 범위의 확대 가능성이 높고, 방법 또한 명예퇴직뿐 아니라 정리해고, 폐업에 의한 실직 등 다양해질 공산이 크다. 기업간 인수합병이 다수 예정되어 있고, 부실 상태에 있는 기업의 매각 및 청산 스케줄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의 다운사이징이 시장과 제도 변화에 대한 예방적 대응이었다면, 2016년 구조조정은 경쟁 구조 재편과 부실 청산에 따른 좀 더 근본적 조치라는 점에서 그 수준과 영향의 심각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고용문제는 경제적 위기뿐 아니라 사회적 위험을 수반한다. 작금에 벌어지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원인 대부분은 일자리 문제로 환원되며, 따라서 노사정 모두는 고용 위기가 초래할 사회경제적 위험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인력의 합리적 운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비용 우선의 구조조정은 기업 조직의 미래 역량과 가치를 잠식할 가능성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 불안은 핵심 인력의 기업 이탈을 유인하며, 잔류 인력의 불안과 조직 몰입 저하 나아가 자기 이익 극대화의 기회주의적 선택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선택이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져 파산에 이르렀던 사례는 기업 역사에 다수 존재한다.
노동조합도 일자리 보호를 위한 방법 모색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수단으로 하는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응해 일자리 보호를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인사관리 체계의 합리적 조정, 임금체계의 개편, 근로시간 단축 등을 주도적으로 고민해 전략적 해법을 제안해야 한다. 해고 중단의 구호와 소수의 ‘총파업’만으로는 구조조정에 대항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다. 그 동안 정부는 고용률 개선을 위한 정책 모색, 기업을 대상으로 한 채용 유도, 사회적 대화 참여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도 기업의 구조조정 앞에서는 별 힘을 쓰지 못했다. 새해를 맞이한 작금에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은 고용위기를 관리할 ‘비상전략회의’를 구성하는 일이다. 기업의 해외 이탈이 가속화되던 1980ㆍ90년대에 의회를 중심으로 일자리 유출 방지를 위한 정책 해법과 입법 수단을 모색했던 미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과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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