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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선거 뛰는 CEO들

입력
2016.0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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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새해 가장 큰 행사는 아무래도 4월에 치르는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다. 4년 동안 작게는 지역 살림부터 크게는 나라 살림까지 고루 살피고 법과 제도를 정비할 선량을 뽑아야 하니 그 어떤 행사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뜨거운데 그 바람에 기업들, 특히 공기업들이 때아닌 곤욕을 치르는 모양이다.

기업 경영보다 더 중요한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겠다며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 최고경영자(CEO)들 때문이다. 모 업종 협회장은 지난해 말 사임하고 예비후보등록을 마쳤다. 그가 재임한 기간은 불과 6개월 남짓이다. 그는 협회장 공개모집을 거쳐 취임할 때부터 말이 많았다. 형식은 공모절차를 거쳤지만 청와대에서 일한 전력 때문에 선정된 것이 아니냐며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 돌았다.

특히 부총리를 지낸 정치권 실세와 가깝다는 설과 함께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일찌감치 났다. 그만큼 협회 일에 소극적이라는 비난이 돌더니 아니나 다를까 2년 6개월의 임기를 남겨 두고 덜컥 그만둬 버렸다.

이 일로 6개월 사이에 두 번이나 회장 공모를 하게 된 협회만 바빠졌다. 더 큰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인 현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점이다. 사석에서 만난 협회 관계자는 “2015년은 회원사들에게 중요한 법 개정 등 온갖 민감한 일이 얽혀 있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해였는데 사실상 하반기를 협회장이 공석이나 마찬가지 상태로 보냈다”고 한숨을 쉬었다.

모 기업도 마찬가지다. 임기를 1년여 남겨둔 CEO는 지난해 초부터 입각설이 돌더니 연말에 총선 출마설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지난해 해당 기업의 홍보실은 기업이나 제품 홍보보다 CEO 홍보에 집중했다. 심지어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돌릴 법한 기념품까지 만들어 기자간담회 때 돌렸다가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이 기업도 지난해 경쟁업체들과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치른 만큼 CEO가 할 일이 많았는데 정작 주요 현안에서 빠져 있는 모양새였다. 오죽했으면 노조에서 “입각이나 선거에 관심 있으면 빨리 마음을 정해서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말고 떠나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하게 이름을 밝히고 싶지만, 입후보자의 경우 행여나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에 저촉될 까봐 그러지 못하겠다. 그러나 지난해 말 동반 사퇴한 박완수 인천공항공사 사장과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지역 신문 등에 보도됐으니 그냥 실명을 쓴다.

박 사장은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 둔 상태에서 경남 창원에 출마하기 위해 사장 자리를 그만뒀고 10개월 남짓 임기가 남은 김 사장은 경북 경주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친박계 인사로 분류된다. 인천공항은 인근 국가들의 주요 공항들과 허브 공항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중이고 한국공항공사 역시 김포, 제주, 김해공항 등의 시설 개보수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한 상태다. 그런데도 CEO들이 임기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니 당연히 공사 안팎에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에 나가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니 왈가왈부 할 수 없다. 다만 이들의 책임감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임기 중간에 발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더 큰 일을 할 몸이니 잠시 쉬었다 가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예 CEO 자리에 앉지 말아야 옳다. 그들이 소임을 다하지 않은 뒷감당은 수 많은 직원들과 기업이 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CEO 자리를 마치 입각이나 선거를 위해 잠시 머무는 정거장 정도로 여기는 무책임한 사람들을 막기 위해 공모를 거쳐 선정된 CEO는 임기 중 공직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제한했으면 한다. 특히 국가 기간 산업과 관련된 공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헌법에 명시된 선거의 자유를 제한하는 소리일 수 있지만 책임감이 희박한 사람들이 공직에 나아가면 폐해가 더 클 수 있다.

최연진 산업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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