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주가 시작되면 신년 소망과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목표는 멀어 보이고 원대해 보이다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 우리사회에서 태반인 열에 일곱이 이처럼 신년 다짐을 이내 잊고 만다. 그럼에도 한 해의 무거운 숙제를 잘 지켜낸 이들은 많다. 무인도 체류, 연극배우와 치즈 장인 도전 등 조금 색다른 성공을 거둔 3인에게서 신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비결을 들어봤다.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 없이 무언가를 이뤄내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3인은 비록 과정이 달랐지만 “이것 저것 재지 말고 지금 당장 밀어붙여라”는 주문은 동일했다.
실패를 두려워 말라. 변신은 아름답다
11년 차 소방관 최민석(33ㆍ사진)씨에게 2015년은 ‘치유와 극복’의 한 해였다. 최씨는 2005년 의무소방 복무를 마치고 특채로 입사한 이후 20대 내내 줄곧 소방관의 길을 걸어왔다. 화재 출동과 행정 업무에 떠밀려 살던 그에게 많은 소방관들이 앓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찾아온 건 2012년.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하던 동료 직원의 순직을 목격한 뒤로 실의에 빠졌고, 불면증도 그를 괴롭혔다. 가만히 있어도 스트레스 지수는 평균을 훨씬 상회했다. 여기에 친구의 죽음, 연인과의 이별까지 겹치면서 증상은 심해졌고 결국 2014년 우울증 판정을 받아 1년 간 휴직을 결심했다.
웃음을 잃은 그의 지난해 목표는 ‘웃음 되찾기’였다. 마침 그는 2007년부터 직장인 연극 동호회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담당 의사는 다른 인생을 사는 연극이 도움이 될 거라며 그에게 취미를 즐기라고 조언했다. 최씨는 연극을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을 떠올렸고, 기왕이면 서울 대학로의 프로 배우들과 함께 연극을 하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연기의 ‘귀신’들이 즐비한 대학로 연극판에서 지인 한 명 없는 아마추어가 배역을 따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처음에는 수십 차례 고배를 마시며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하지만 최씨는 굴하지 않고 동호회 경력과 열정을 어필하며 각종 오디션에 지원했다. 낙방을 할수록 그 동안 잃어버린 의지가 되살아났다. 결국 그는 100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었고, 연극 ‘셜록 홈즈’의 감초 조연 배역을 얻는 기적을 이뤄냈다.
덜컥 연극 배우의 삶이 시작되면서 고된 연습이 이어졌다. 공무원 신분이라 돈을 받진 않았지만 매일 15시간 넘게 연습하며, 밤에는 시나리오 작업에도 몰두했다. 그렇게 3월부터 12월까지 쉴 새 없이 3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수십 회 공연을 하고 나니 어느덧 팬까지 생겼다. 우울증 상태도 호전돼 지난해 10월에는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다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달 2일 인천 남동소방서 진압대로 복귀한 최씨는 “평소 나와는 관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목표에 막상 뛰어드니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앞으로 소방서와 관련된 연극 시나리오를 쓰는 새 꿈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일단 시작해라. ‘귀인’은 언제나 있다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윤승철(27ㆍ사진)씨는 극한 분야에선 꽤 유명한 인사다. 2012년 고비, 사하라, 아타카마, 남극 등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이뤄 화제가 됐고 탐험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소설도 썼다. 그에게 지난해는 새로운 도전의 시기였다. 온전히 100%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그래서 삶과 미래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 수 있는 동경의 대상인 무인도 정복에 나선 것이다.
자발적 ‘로빈슨 크루소’ 되기는 만만치 않았다. 2013년 서해의 한 선장에게 부탁해 무작정 한 섬에서 지내봤지만 사유지라 쫓겨나 실패한 경험도 있었다. 윤씨는 일단 인터넷에서 세계 위성 지도를 띄운 뒤 마음에 드는 섬이 있으면 최대한 확대해 주변 환경을 살폈다. 그 중 눈에 들어온 곳이 필리핀의 팔라완. 그렇게 윤씨는 지난해 2월 동생과 함께 맥가이버 칼과 낚시 바늘만 달랑 들고 무작정 팔라완으로 떠났다. 현지 사정에 대한 정보도, 무인도에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다행히 마을 주민들은 무인도로 가는 배편과 날씨, 비상시 대처 상황 등을 알려주고 윤씨의 신변을 확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안전 신호를 주고 받겠다는 약속을 해줬다.
꿈만 같던 3주 간의 무인도 생활은 모험 그 자체였다. 첫 주에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코코넛 열매에 의존했지만, 둘째 주부터 사냥 요령이 생겼다. 3주 차에는 물고기를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막대기의 마찰열로 불도 능숙하게 피웠다. 윤씨는 “하루 중 불 피운 일이 가장 자랑스러울 만큼 원시생활 그 자체였지만, 아무 간섭 없이 온전히 내 몸과 생각을 자유롭게 쓴다는 생각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가 무인도에 다녀온 후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대학 신입생부터 50대 남성까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인도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윤씨는 무인도 원정대를 만들자는 두 번째 목표를 세웠다. ‘이카루스’라는 이름의 이 원정대는 지난해 10~15명씩 그룹을 이뤄 네 기수가 무인도를 다녀왔고, 올해도 3월까지 무인도 탐험 일정이 빼곡히 잡혀 있다. 윤씨는 “처음에는 황당한 목표라고 생각했으나 일단 저지르고 보니 생각지 못한 주변 도움도 생겨나 조금씩 목표로 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목표가 있다면 버릴 건 버리자
장진서(31ㆍ사진)씨는 남부럽지 않은 국내 유명 대기업의 성실한 사원이었다. 하지만 등 떠밀리듯 입사한 회사에서 3년 차에 ‘직장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 무렵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치즈 장인의 열정적인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식당을 가면 치즈가 들어간 음식부터 찾는 ‘치즈 마니아’였던 그는 엑셀 프로그램으로 매출을 집계하는 일이 아니라 치즈를 만드는 일이 자신이 갈 길이란 생각이 미쳤고, 결국 지난해 1월 홀연히 사표를 던졌다. 치즈의 나라 프랑스에 있는 치즈 전문학교에 입학하는데 모든 것을 걸기 위해서였다. 사회 초년생이라 모아둔 돈도 적고, 대학교 때 외국 한 번 나간 적 없는 그였지만 한 번 목표를 세운 뒤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당과 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프랑스 유학생과 언어 교환을 통해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지난해 4월 무작정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장씨는 “치즈학교 입학 허가조차 받지 않았지만 프랑스에 가면 뭐라도 이뤄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일이 기분대로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몸으로 부딪히자 기회가 미소 지으며 찾아왔다. 부족한 프랑스어 때문에 면접을 통과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뜻밖에도 학교는 유일한 동양인 지원자의 열정을 높이 사 입학 허가를 내줬다. 그가 9월부터 수업을 듣고 있는 프랑스 국립유가공학교 ENIL(Ecole Nationale de l'Industrie Laitiere)은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치즈 전문학교. 장씨는 이 학교에 입학한 두 번째 한국인이다. 돌연 사표를 쓴지 3개월 만에 프랑스로 날아가 다시 5개월 만에 이뤄낸 성취였다.
물론 갈 길은 아직 멀다. 개강 첫 달에는 거의 수업을 알아 들을 수 없어 기숙사에서 사전을 외워가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래도 그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지금은 프랑스 서부 낭트의 작은 농가에서 인턴으로 치즈 만들기 실습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장씨는 “순식간에 진행된 이 모든 일들의 출발은 가진 것을 비워내고 나를 똑바로 본 것”이라며 “어떤 일에도 주변 도움을 얻으며 나아가면 안 될 일이 없다”고 조언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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