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의 악기는 공연장”
대구콘서트하우스, 국내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 자신
1975년 개관한 대구시민회관이 1일부터 대구콘서트하우스로 이름을 바꿨다. 세계적인 클래식 전용 공연장을 지향하는 음악애호가들과 시민들의 바람을 담은 이름이다. 대구콘서트하우스는 2011년부터 3년간 559억 원을 투자, 1,284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248석의 소공연장 등을 갖춘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공연장으로 거듭 나면서 공연은 물론 관객들의 수준도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전 좌석 릴레이 매진의 신화를 쓰고 있는 이형근(64)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으로부터 공연문화도시 대구의 꿈을 들어봤다.
_대구시민회관은 40여 년간 대구시민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대구콘서트하우스로 개명한 이유는.
“2013년 11월 콘서트 전용홀로 재개관했지만 기존 시민회관이 갖는 다목적 공연장과 대중 집회장소의 이미지 때문에 국제적 클래식공연장으로 부각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출판기념회와 소방대피훈련, 부적합한 대관신청이 줄을 이었다. 외국인에게 ‘Daegu Citizen Hall’이라고 소개하면 시청 청사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베를린과 비엔나 등 세계적인 도시에는 콘서트하우스가 상징처럼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도 국내 최고 공연장의 브랜드를 세계에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_국내 최고의 클래식 전문 공연장으로 소문이 나 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는 공연장이라는 말이 있다. 2011년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에서 연주를 해보니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연장의 차이가 오케스트라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것이다. 대구콘서트하우스는 대구의 대표적 건축가인 김인호(1932∼1989)씨의 유작으로 부드러운 처마 곡선을 형상화한 건물이다. 대구 공연문화의 구심점이었으나 시설 노후화로 지붕 누수와 공연 차질, 적자 운영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리노베이션을 하게 됐다. 서울 ‘예술의 전당’은 소리가 풍부하지만 울리는 단점이 있는 반면 대구콘서트하우스는 풍부하면서 섬세하다. 이는 변형 슈박스 형태의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장이 음향 사각지대를 없애고 소음을 차단하는데다 객석이 무대와 인접한 장점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고 공연장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_2015년의 공연활동을 소개해달라.
“고품격 공연이 줄을 이은 한 해였다. 지난해 5월 북독일방송교향악단에 이어 러시아내셔널심포니, 베를린도이치심포니, 호주 시드니심포니 등 10여개의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백건우, 조수미, 기돈 크레머, 디토 등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지난해 10월23일∼11월20일 한 달간 진행된 ‘아시아 오케스트라 심포지엄’과 세계현대음악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대구국제현대음악제’가 열렸다.”
_대구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13회 연속 매진이라고 들었다. 보통 시향 공연은 인기가 없는데.
“무엇보다 공연장이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클래식 음악의 특성에 맞게 잘 리모델링됐다. 연주자와 관객의 만족도가 높아진 이유다. 또 소득이 높아지면서 순수예술 감상 인구가 증가하는 사회현상과 대구의 뿌리깊은 음악적 토양이 만든 결과다. 2014년 12월 관장 부임해서 곧 ‘회원제’를 폐지했기 때문에 정기연주회 관객 점유율은 허수가 아니다. 여기에는 줄리안 코바체프라는 지휘자와 단원들의 공이 크다. 관객수가 2014년 8만3,892명에서 2015년 13만20명으로 증가했다. ”
_코바체프는 어떤 지휘자인가.
“공연 중 심장마비로 무대에서 쓰러졌다 객석의 심장전문의와 소방관의 도움으로 회복한 사연을 통해 많이 알려져있다. 그는 부드러운 리더십과 멋진 무대 매너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러시아 오페라 음악의 표현력이 뛰어나다. 2019년 3월까지 계약기간이 연장되기도 했다. 반면 코바체프의 전임인 곽승 지휘자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장악하는 전통적인 지휘자다. 곽 지휘자가 닦은 터전 위에서 코바체프의 지휘력이 더욱 빛나고 있다.”
_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도 역임하셨는데, 대구의 음악 수준을 평해달라.
“대구는 우리나라 서양음악의 태동지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중인 1951년 현제명 선생의 오페라 춘향전이 공연됐을 정도다. 그 저력으로 단독 건물로는 전국에서 유일한 오페라하우스를 갖고 있다. 올해로 14회째 국제오페라축제를 개최하는 아시아 오페라의 중심도시기도 하다. 창단 52년의 시향 역사가 말해주듯 대구는 관현악이 발달한 도시다. 지난해 대구콘서트하우스 무대에 섰던 1,000여명의 외국인 연주자들이 공연장의 뛰어난 음향과 종사자들의 높은 서비스, 관객의 높은 음악 수준에 ‘원더풀’을 외쳤다. 서울은 인구 수만 믿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지만, 대구는 악조건 속에서 좋은 공연을 선보이려하니 신개척지를 가야만 한다.”
_그렇더라도 클래식은 쉽지 않은 영역이다. 시민들이 클래식과 친해지는 지름길이 있나.
“음악은 음식처럼 어릴 때 맛을 들여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기회가 없었다. 시험치기 위해 음악을 공부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이해하기 위해서 음악을 듣지말고 단지 느껴보라. 35분이면 베토벤 운명교향곡을 다 듣는다. 속는 셈 치고 클래식에 6시간만 투자해보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_평생 음악과 함께 살면서 개선이 필요한 영역도 눈에 띄었을 것 같다.
“서양문화의 총제인 오케스트라가 우리나라에 악기와 악보, 기법을 전수하기는 했지만 운영시스템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공립 오케스트라단에 오래 있다보면 자부심은 떨어지고, 쓸데없는 자존심만 세지는 특성이 생긴다. 이것은 전근대적인 운영시스템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는 협연을 해야 하는데 신입 단원 채용시 동료 단원을 배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또 선발 후 협연을 위해 1, 2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한데도 실제로는 없다. 스스로 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구는 6개 예술단의 특성이 다른 만큼 소속이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_올해 공연 청사진과 비전은.
“콘서트하우스라는 명칭에 걸맞게 ‘월드오케스트라 시리즈’로 공연을 확대할 계획이다. 연중기획으로 250년 역사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짐머만,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 벤케로프 등 초일류 연주가들을 초청할 것이다. 시민들이 서울이나 외국을 가지 않더라도 세계적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겠다. 대구콘서트하우스를 국제적 클래식공연장으로 발전시켜 공연문화도시 대구를 세계에 마케팅하겠다.”
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약력
서울대 음대
국립교향악단 단원
경북심포니오케스트라 초대 상임지휘자
대구시립오페라단 음악기획 겸 지휘자
경북도립교향악단 초대 상임지휘자
영남대 음대 겸임교수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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