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원 교수 ‘2016년 세계 및 한국 경제전망’
세계경제 위기 아니라도 위험요소 많아
中성장률 6%ㆍ국제유가 30달러로 떨어질 것
취약 신흥국 난관 복합적.. 부채는 신흥국 전반 번져 있어
유럽ㆍ日 성장부진 지속… 美도 튼튼치 않아
한국 경기부양ㆍ성장력확충 병행해야
기초여건 양호해 美금리인상 등 여파 제한적
잠재성장률 한은 추정치보다 낮을 것
성장력 잠식하는 저출산ㆍ규제 해소도 필요
“취약 신흥국이 부딪친 난관은 복합적입니다. 특히 부채 문제는 취약국을 넘어 신흥국 전반으로 번져있는 상황입니다.“
재미 경제학자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구랍 28일 전화와 이메일로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의 명쾌한 설명으로 올 한 해 글로벌 경제의 주요 흐름을 짚었다. 정확한 경제전망으로 정평이 난 그가 전망하는 세계경제는 ‘부진한 선진국, 위기의 신흥국’으로 요약된다. 미국, 중국, 원자재시장의 세 장대 사이에서 출렁대는 외줄을 탄 줄꾼을 연상케 한달까.
손 교수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거두지 않았다. 그는 “한국은 경제적 선진국”이라며 신뢰를 표하면서도 잠재성장력을 회복해 저성장 흐름을 막는 것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숙제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제
-올해 글로벌 경제의 전반적 흐름을 어떻게 전망하나.
“성장률은 역사적 평균(1980~2015년 3.5%)보다 낮을 것이다. 주요국 중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낫지만 튼튼하진 않다. 유럽과 일본은 경기후퇴 국면에선 빠져 나왔으나 성장력이 약하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하다. 신흥국은 중국경기 둔화,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경제가 위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위험 요인은 많다고 본다.”
-가장 큰 관심은 지난 연말 단행된 미국 금리인상의 파급력이다.
“연준이 오래 전부터 예고했고 시장도 이미 반응한 사안이라, 한국을 포함한 경제선진국에는 큰 여파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연준은 점진적 인상을 공언하고 있다. 2016년 여덟 차례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네 번 정도 0.25%포인트씩, 모두 1%포인트가량 금리가 오를 것 같은데 이 정도면 큰 변동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신흥국에선 경상수지 적자와 맞물려 자본 이탈이 심화될 수 있다.”
손 교수는 “연준이 금리를 도로 내릴 가능성이 아주 크진 않아도 30%는 된다”고 내다봤다. 미국 내수경기 회복세가 견고하지 못한 가운데 수출 부문이 달러화 강세, 글로벌 시장 위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긴축, 유럽ㆍ일본ㆍ중국은 완화, 한국은 중립 등 각국 통화정책이 각자도생 양상이다. 부작용은 없을까.
“통화정책 엇박자는 올해도 계속될 것이다. 유럽, 일본, 중국 등 성장률이 둔화되고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주요국들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며 미국과 반대 방향으로 갈 것이라 생각한다. 대만이 연준 금리인상 직후 금리를 내렸듯이 다른 나라 역시 미국을 꼭 따르는 건 아니다. 금리를 내리면 자본유출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통화가치가 떨어져 수출에 유리해진다. 자본수지가 다소 악화되더라도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금리인하에 나서는 나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원유 등 자원 수출국이 신흥국발 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취약 신흥국이 부딪친 난관은 복합적이다. 주력 수출품인 원자재의 가격이 중국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둔화로 떨어지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불어나는데 정부의 경제 매니지먼트(관리능력)는 떨어진다. 이로 인한 경제 신뢰 저하가 미국 금리인상과 맞물려 통화가치 하락 및 자본 이탈을 유발하고, 이를 막으려 금리를 올리면서 경제가 더욱 악화된다. 브라질,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실이 이렇다. 인도네시아,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나이지리아, 에콰도르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국제유가가 어디까지 떨어질 지가 관심사다.
“유가 하락은 장기적 요인에서 비롯한 만큼 오래갈 거다. 공급 측면에선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지난 6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나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나 이라크, 캐나다 등은 수입을 유지하려 유가가 내려갈수록 더 많이 생산하고, 핵협상 타결로 제재가 풀린 이란도 증산 채비를 하고 있다. 반면 세계경제가 둔화하면서 석유 수요는 감소하고 있다. (양대 소비국 중)중국은 물론 미국 역시 성장이 미진해 석유 소비가 줄었다. 여기에 자동차, 가전제품 등은 에너지 절약형 모델이 보편화하고 있다. 내 생각엔 유가가 배럴당 30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다.”
-현재 신흥국 상황이 1990년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위기는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신흥국에 주로 국한됐지만 지금의 문제는 취약 신흥국을 넘어 신흥국 전반에 걸쳐 있다. 시장이 ‘새로운 죄’(new sin)라 부르며 경계하고 있는 신흥국 부채 문제가 특히 그렇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막대한 규모로 돈을 풀자 신흥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과도하게 빚을 늘렸고, 그 중 25%가 달러ㆍ유로ㆍ엔화 표시 부채다. 신흥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빚이 절로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 성장세가 뚜렷이 둔화하고 있다. 경착륙 가능성은 없을까.
“중국 경제는 2015년 6.5%, 2016년 6% 정도 성장하며 하향 추세를 이어갈 거다. 이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구조조정과 맞닿아있다. 설비투자와 수출에 집중됐던 자원을 소비, 교육, 사회복지, 건강 쪽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농촌 인구의 소도시 이주 정책도 소비 증진책이라 할 수 있다. 구조조정엔 시간이 걸린다. 최근 중국에 가보니 구(舊)경제가 줄어드는 만큼 신(新)경제가 빨리 커나가지 못하는 양상이다. 그 격차가 성장률 감소로 나타나는 셈이다. 중국인들은 자국 경제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가 필요할 때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나 정책수단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위안화 약세 흐름이 가파르다.
“중국 정부가 올해도 위안화 가치를 최소 5% 내릴 거라고 예상한다. 최근 위안화 환율을 미국 달러화 대신 13개 통화로 구성된 바스켓에 연동시킨 것도 위안화 절하 여지를 늘리려는 포석이다. 금리 인하 등 유동성 확대 조치도 뒤따를 것이다. 자본이탈 우려보단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에 기반한 일본 경제의 전망은.
“아베노믹스의 세 화살 중 첫 번째인 양적완화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직후 ‘깜짝 조치’로 단행돼 상당한 성과를 냈다. 새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소비 확대, 주가 상승 등 긍정적 반응이 따랐다. 그러나 양적완화의 반짝 효과가 사라진 가운데 두 번째 화살인 재정정책은 막대한 재정적자, 가장 중요한 화살인 구조조정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각각 가로막히면서 아베노믹스 동력은 약화된 상황이다. 올해도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 우려 속에 부진한 성장률을 보일 것이다.”
▦한국 경제
-한국 내부에선 저성장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지난해 국제신용평가사 두 곳이 한국 신용등급을 올리는 등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정치 부문은 모르겠지만 경제적인 면에선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매니지먼트가 잘 작동하고 있고 외환보유액도 풍부하다. 무디스도 이런 사실을 인정해 지난달 한국 신용등급을 높인 거다. 저성장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 경제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미국도 50년 전 5~6%였던 성장률이 지금은 잘해야 2% 수준이다. 잠재성장력을 회복해 저성장 흐름을 막는 것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문제다.”
-한국 잠재성장률은 급속히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은행 추정에 따르면 2006~10년 3.8%에서 2015~18년 3.0~3.2%로 떨어졌다.
“실제 잠재성장률은 한은 추정치보다도 낮을 거라고 생각한다. 백악관 근무 시절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미국 잠재성장률 계산이었는데, 잠재성장률 산정에 있어 중요한 양대 요소가 노동인구와 생산력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두 요소는 각각 낮은 출산율, 설비투자 부진 탓에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비투자를 하더라도 해외에서 이뤄지는 비중이 높다. 정부 규제가 많다는 점 또한 한국 잠재성장률 저하 요인이다.”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력을 높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잠재성장력 회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십 년 이상 내다보며 정책을 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규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다만 이러한 정책 기조가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보수파로서 정부 개입을 죄악시했던 미국 레이건 정부조차 8년 집권을 마치고 나니 규제가 되레 늘어났을 만큼 규제 완화는 어려운 작업이다. 또 출산율 및 여성 노동참여율을 높여 충분한 노동인구를 확보해야 한다. 여기엔 정부 시책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선 설비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적극적 부양정책,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경기전망을 밝혀야 가능하다.”
손 교수는 특히 해외 인력을 적극 받아들여 ‘윔블던 효과’를 극대화할 것도 주문했다. 그는 “윔블던 대회에서 영국 선수가 우승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영국은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 개최지로서 위신과 경제적 수입을 챙긴다“며 “미국 실리콘밸리, 뉴욕 및 런던 금융시장 역시 전체 인력의 3분의 1을 해외 인재로 채우고 해당 분야의 중추적 중심지로서 이득을 얻는다.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에 제로금리 정책을 펼 것을 거듭 제안하고 있는데.
“기준금리를 꼭 제로 수준이 아니더라도 과감하게 내리자는 것이다.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면 이전처럼 0.25%포인트씩 찔끔찔끔 금리를 내리는 대신 0.5%포인트나 1%포인트씩 대폭 낮춰야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하고 정책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미국 및 일본의 양적완화가 효과를 거둔 이유이기도 하다.”
-가계부채 부실화, 자본유출 우려를 들어 추가 금리인하는 어렵다는 반론도 많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지하경제 규모가 가장 커서 실제 가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정부 통계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한다. 설령 가계부채 규모가 너무 커서 조정이 필요하더라도 규제정책으로 풀어야지 통화정책을 바꿀 일이 아니다. 자본이탈 우려도 지나친 감이 있다. 한국에 투자하는 근본적 이유는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미국은 금리를 올리고 한국은 내려 금리차가 줄어든다고 큰 돈이 오갈 것이라 보지 않으며 풍부한 외환보유액이라는 안전판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재정정책만으론 어려운 만큼 통화정책이 손을 잡아줘야 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손성원 교수는
경제 및 금융 부문에서 이론과 현장 경험을 두루 갖춘, 미국 경제학계의 대표적 석학이다. 광주제일고 졸업(1962년) 후 미국으로 건너가 피츠버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대였던 1973~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직속 경제자문회의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하며 일찌감치 두각을 보였으며, 탁월한 경제전망 능력으로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등 유력매체들이 선정한 ‘가장 정확한 예측가’ 명단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1974년 백악관에서 노스웨스트은행 부행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은행가로 변신한 뒤 대형 상업은행 웰스파고의 부행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1998~2004년), 미주 한인은행인 한미은행 행장(2005~07년) 등을 맡아 30년 넘게 월가를 비롯한 금융 현장에서 굵직한 경력을 쌓았다. 2008년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로 부임해 연구하고 가르치는 한편, 글로벌 의류소매체인 포에버21 부회장, 로스앤젤레스공무원퇴직연금(LACERA) 관리위원(현직) 등을 역임하며 현업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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