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전북 익산 출생
이화여대 약학대 졸업
“나이 제한 두지 않아서 고마워요. 이제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겠어요.”
조선수(56)씨는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중 가장 고령이다. 간단한 인터뷰란 말에도 곱게 단장을 하고 온 그는 내내 어색해하다가 결국 카메라 앞에서 반짝이는 목걸이를 풀어 내렸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7년. 당선 소식에 ‘왜 내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한다.
이화여대 약학대를 졸업한 조씨는 몇 년 전까지도 약사로 일했다. 읽는 것만 좋아했지 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그가 처음 소설을 쓴 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달 뒤부터였다. “일터가 있는 서울에서 병원이 있는 익산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오가면서 내 삶에 ‘나’는 어디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작정 달려든 소설엔 신기한 면이 있었다. 어머니만 썼지 자신은 잘 쓰지도 않던 사투리가 마치 모국어처럼 손에 붙어 나왔다. 쓰고 나면 정신과 의사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치유 효과가 컸다. 하루 만에 단편소설 한 편을 쓴 적도 많았다.
“취미가 따로 없어요. 노는 것도 싫어하고요. 전공도 약사 딸 보고 싶어하신 아버지 때문에 택한 면이 크죠. 소설을 쓰는데 이게 내 일이구나 싶었어요. 쓰는 게 늘 즐겁지만은 않지만 고통 속에 쾌감이 있어요. 쾌통(快痛)이라고 하죠. 아무도 내 글을 안 읽어주더라도 쾌감의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그는 소설 쓴단 얘기를 내놓고 하지 못했다. 전공도 무관한 데다 주변엔 여전히 약사 친구들이 많아 이야기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소설 쓰다가 힘들면 시를 쓰고 시가 안 되면 소설로 돌아오는 나날이 반복됐다. 그러던 중 올해 4월 문예지 ‘유심’을 통해 덜컥 시인으로 등단했고, 얼떨떨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소설로도 당선이 된 것이다. 조씨는 당선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심사위원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고서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진심으로 기뻐해줬어요. 예전엔 같이 드라마 보자는 남편 옆에서 눈치 보면서 책 보고 글 썼거든요. 이젠 따로 앉아 글 써도 뭐라 안 해요.(웃음)”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을 묻는 질문에 그는 “최소한 요즘 나오는 게임만큼은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답했다. “일단 읽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웬만한 사람은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작가의 의도가 너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때론 쓰는 사람도 예기치 못한 의외성이 탄생할 때, 그때가 정말 좋더라고요.”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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