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까지 해고당하는 세태
낮은 연차 직장인들 불안감 커져
방어막 찾아 노조 가입 알아보고
공기업 등 안정적 회사 찾기도
기업들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 30대 직장인들의 어깨가 바짝 움츠러들고 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과거 임금을 많이 받는 높은 직급에 집중됐다면 요즘은 신입사원들까지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두산인프라코어다. 실적 악화와 경영난에 처한 두산인프라코어는 올들어 4번째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신입사원과 2년차 사원까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실제로 지난해 1월 1일 이후 입사한 1, 2년 차 직원 88명 중 28명(31.8%)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뒤늦게 1, 2년 차 사원들의 희망퇴직 신청을 모두 반려해 사태를 진정시켰지만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에서 제외됐던 신입사원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충격의 여파가 컸다.
그만큼 직장인들이 느끼는 고용 불안감이 크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이달 직장인 1,3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 고용 상태에 불안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69.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특히 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63.8%), 30대(69.5%) 모두 3명 중 2명꼴로 고용 불안감을 호소해 주로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대상에 포함되는 40대(78.7%)나 50대 이상(78.4%) 못지않게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입사 초기의 20, 30대 직장인들에게 이들이 느끼는 고용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솔직한 얘기를 들어봤다.
● ‘두산 충격’에 노조 가입 계획
올해 8월 서울 소재 A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이 모(25)씨는 얼마 전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 통신 대기업 B사에 입사했다. 입사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삼성, LG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들에 지원했다가 연거푸 고배를 들자 당초 2월 예정이었던 졸업도 한 학기 미루면서 재도전한 끝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는 “전공인 전기전자 업종의 기업에 취업이 안 돼 차선으로 통신분야 기업을 택했는데 다행히 직무는 전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을 담당하게 됐다”며 “야근도 그리 많지 않아 아직까지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신입사원인 이씨에게 회사가 희망퇴직을 요구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는 “새로운 회사에 취업이 가능할 정도로 젊은 나이라면 회사가 준비한 일정 정도의 보상(위로금)을 받고 희망퇴직 요구를 받아들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회사가 신업사원조차도 내칠 정도로 어렵다면 앞으로도 전망이 좋지 않을 것”이라며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만약 나이가 29, 30세로 신규 취업이 곤란한 나이라면 대답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희망퇴직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이씨조차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동안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노동조합에 곧 가입할 계획이다. 입사 후 선배들이나 아버지가 노조 가입을 수차례 권유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에게 ‘두산의 신입사원 희망퇴직’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그는 다니고 있는 회사에 복수노조가 있어서 어떤 노조에 가입할지 알아보는 중이다. 그는 “신입사원은 회사 내에서 거래 관계인 ‘을’보다도 못한 존재”라며 “회사가 희망 퇴직 종용이라는 가장 심한 갑질을 하는 것을 보고 인사문제가 닥쳤을 때 최소한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라도 노조에 꼭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고용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기업으로 이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통신업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통신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이고 새로운 성장 가능성도 낮아 머지않아 희망퇴직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정년이 보장되고 전공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한국전력이나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소로 이직하고 싶어 자격증 취득 등 차근차근 준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보다 안정적 기업 좋아
서울 소재 정보기술(IT)관련 중소기업 M사에 다니는 입사 3년 차 직원 박모(26)씨는 얼마 전까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대기업으로 이직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여러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취업은 그에게도 다른 취업준비생들처럼 가장 큰 목표였다. 그는 2012년 8월 서울 소재 S여대 졸업을 앞두고 화장품이나 식품 분야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어 졸업을 한 학기 미루기도 했다. 2013년 2월 졸업할 때까지도 원하는 대기업 입사에 실패하자 그는 ‘경력을 쌓아 대기업에 이직하겠다’는 생각으로 M사에 입사했다. M사는 연매출 250억원, 임직원 250명, 시장점유율 1위인 건실한 업체다. 초임 연봉 3,000만원으로 급여나 복지도 나쁘지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만 3년 근무를 앞둔 시점에 대기업이 급여나 복지 등 처우가 더 나을 것으로 보여 이직을 고민해 왔다.
그는 최근 두산의 신입사원 희망퇴직 소식을 듣고 대기업 이직을 아예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직원을 바라보는 기업과 오너의 사고방식이었다. 박씨는 “두산 사건을 보고 직원들을 필요할 때 부품처럼 썼다가 용도가 다했다 싶으면 신입사원까지 아무 때나 헌신짝처럼 버리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그는 M사가 ‘핵심인재인 신입사원이 커야 회사도 성장한다’고 강조하며 직원들을 키우고 애사심을 갖게 해 준 점에 고마워했다. 그는 “두산의 행동을 보고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며 “대기업들이 언제든 줄 서 있는 지원자 중에 뽑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손쉬운 구조조정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약자에게 책임 미루는 듯
수도권의 S대 토목환경공학과를 졸업한 조모(31)씨는 2012년 6월 연봉이 높고 사회적 인식도 좋은 대기업 L사에서 3년간 근무하다 올해 6월 이직했다. 회사가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을 하나 둘씩 통폐합하면서 그가 처음 배치 받은 부서도 사업을 정리해 전공과 무관한 IT 융합 업무를 맡게 되면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는 “IT 관련 업무를 배워 실력을 키우기보다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일이 많아 만족도가 낮고 항상 10년쯤 후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오면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의 구조조정 소식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전에 몸담았던 L사 역시 지속적으로 몸집을 줄여서 이직을 했는데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난처한 상황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신규 공채로 입사하는 경우 내보내는 일이 별로 없어 버틸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퇴사 후 회사에 남은 동료들한테서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대답을 듣고 옮기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2년간 휴학했던 경험이 있는 그는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시키는 구조조정에 대해 대학이 신입생들에게 등록금 부담을 전가해 비난을 샀던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둘 다 가장 힘 없는 자들이 부담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일부 대학들은 해마다 등록금을 올려 학부모와 재학생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2~4학년 재학생들의 인상률을 한 자릿수로 낮추고 대신 신입생의 인상률을 두 자릿수로 더 높게 책정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운영하는 전도유망한 IT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그는 “급여나 복지 처우는 대기업에 미치지 못 하더라도 회사가 성장하고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스스로 느끼면서 10년 후 어디 내놓아도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김주리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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