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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오디세이] 스크린도 브라운관도, 기승전 라미란

입력
2015.12.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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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응답하라 1988’에서 뽀글거리는 퍼머 머리에 호피무늬 옷을 입고 ‘쌍문동 치타 여사’를 연기하는 배우 라미란. CJ E&M 제공
tvN ‘응답하라 1988’에서 뽀글거리는 퍼머 머리에 호피무늬 옷을 입고 ‘쌍문동 치타 여사’를 연기하는 배우 라미란. CJ E&M 제공

영화계에선 그저 ‘여자 오달수’로 통했다. 영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크든 작든 많은 영화에 출연하는 스크린 단골 손님이었다. 그렇게 ‘만년 조연’일 것 같던 그녀, 이제는 ‘기승전 라미란’으로 불린다.

“밥 먹어!” “셋 셀 동안 안 나오기만 해봐. 하나, 둘!”하는 소리가 쌍문동 골목길 어딘가에서 쩌렁쩌렁 울릴 것 같다가도, “돈 필요해? 힘들면 언제든 말해”라며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는 한 없이 다정한 우리네 엄마. tvN ‘응답하라 1988’(응팔)을 통해 전 국민을 들었다 놓는 ‘쌍문동 치타 여사’ 배우 라미란(40)이다.

tvN ‘응답하라 1988’의 배우 라미란. CJ E&M 제공
tvN ‘응답하라 1988’의 배우 라미란. CJ E&M 제공

‘전국노래자랑’에 나가기 위해 윤수일의 ‘황홀한 고백’에 맞춰 춤을 추고, 스파게티 면으로 비빔 국수를 만들거나, 함박 스테이크에 총각김치를 곁들이며 “휴전(원래는 퓨전)으로 해봤어?”라고 능청을 떠는 연기는 실생활 속 아줌마 그 자체다.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다. 그간 쌓아온 연기 내공이 드디어 통한 것이다. 30여 편의 연극과 뮤지컬에 꾸준히 출연하던 그녀는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얼굴을 알렸다. 과감한 알몸 노출 장면으로 혹독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영화계는 그녀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주진 않았다. 영화 ‘음란서생’의 부인1, ‘괴물’의 발동동 아줌마, ‘잘 살아보세’에선 언년네, ‘그녀는 예뻤다’는 맞선녀2, ‘박쥐’에선 유 간호사, ‘거북이 달린다’의 맛사지녀1 등 제법 이름난 영화에 출연했지만 단역을 전전했다.

그러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건 탈북 여성을 연기한 영화 ‘댄스 타운’에서 첫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서부터다. 실제인지 연기인지 모를 일상적인 표정과 말투가 적나라하게 살아 있는 ‘라미란식 연기’가 빛을 발했다. 이 영화로 라미란은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여자배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그 이듬해 라미란은 ‘댄싱퀸’ ‘차형사’ ‘자칼이 온다’ 등에 조연으로 활약하며 충무로의 활력소가 됐다. 그렇게 조연급 배우로 많은 영화에 출연하더니 결국 지난해에는 ‘국제시장’에서 억척스럽게 장사하며 살아가는 덕수(황정민)의 고모로 등장해 ‘천만 배우’가 됐다. 올해 겨울 대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히말라야’와 ‘대호’에 나란히 얼굴을 내민 건 괜한 우연이 아니다.

영애의 천적으로 나왔던 tvN ‘막돼먹은 영애씨’시즌12의 배우 라미란. CJ E&M 제공
영애의 천적으로 나왔던 tvN ‘막돼먹은 영애씨’시즌12의 배우 라미란. CJ E&M 제공

사실 그녀의 진가는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2(2013)에서 발휘됐다. 깐깐한 성격을 드러내듯 양팔에 토시를 끼고는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영애(김현숙)를 괴롭히던 라 과장이었다. 찜질방 쿠폰을 줬다가 뺏기도 하고 거침 없는 ‘섹드립’(성적인 농담)으로 당혹스런 장면도 서슴지 않았다. ‘막돼먹은 영애씨’의 한상재 PD는 “라미란은 준비성이 철저한 배우”라며 “대본에 적혀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설정들을 준비해 시도하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이러한 이미지는 예능을 만나 폭발했다. 지난해 MBC ‘진짜 사나이’에서 군인보다 더 군인 같던 라미란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솔선수범하는 아줌마 근성이 군인 정신으로 발산돼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영화 ‘스파이’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로 변신한 배우 라미란.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스파이’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로 변신한 배우 라미란.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라미란의 모습은 서민적이라 더욱 친근하다. 가식도 허세도 사치도 없어 보여 무한한 호감을 갖게 한다. 얼마 전에는 ‘응팔’의 의정부 세트장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스태프들에게 “한 달 동안 건강관리를 한 사람에게는 상금을 줄 테니 몸도 챙기고 운동하라”고 권했다고.

여장부에 기 센 아줌마로 보이는 라미란이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요즘 시대의 워킹맘이다. 내년이면 6학년이 되는 아들을 친정 어머니에게 맡겨둔 채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친정 어머니가 라미란의 집이 있는 경기 파주로 이사해 오면서 걱정이 조금 줄었다. ‘응팔’의 인기 덕에 내년 스케줄 표가 꽉 차버린 그는 영화 ‘덕혜옹주’와 ‘김선달’, SBS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등에 출연 예정이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라미란은 일상의 소소함을 살리는 생활밀착형 연기가 뛰어나 남녀노소 모든 층에 어필하는 배우”라며 “영화나 방송 등 그 어떤 영역에 데려다 놓아도 대중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평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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