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차관급 당국회담 결렬에 대표적 사령탑 부재까지 악재 겹쳐
후임에 실무형 원동연, 맹경일 거론… 최룡해 재기용 가능성도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해 온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남북관계는 당분간 경색국면이 불가피해졌다. 오랜 기간 대남협상의 선봉을 맡으며 대표적 비둘기파로 꼽혔던 김 비서의 공백을 북한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메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위원인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 동지가 교통사고로 주체 104(2015)년 12월 29일 6시15분에 73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김 비서를 “충직한 혁명전사이자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가장 가까운 전우”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최측근 실세라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 측근그룹이 숙청과 실각, 복권을 거듭하며 권력지형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김 비서는 건재를 과시했다. 이 같은 김 비서의 정치적 중량감에 비춰보면 이번 유고사태의 파장은 적지 않아 보인다. 가뜩이나 지난 11~12일 열린 1차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이 결렬되면서 소강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에 악재가 겹친 셈이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내년에 남북이 정상회담이라도 추진하려면 큰 이벤트를 조율하는 사람은 경험이 풍부해야 하는데 북한의 사령탑 부재로 남북관계는 한동안 지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김 비서는 대남관계에서 김정은의 신임을 기반으로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해왔다. 또한 김정은 곁에서 직언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김 비서는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김정은의 측근 3인방으로 남한을 찾았고 북한의 지뢰ㆍ포격도발 이후 8ㆍ25합의 때도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함께 협상 대표로 나서는 등 남북관계의 고비 때마다 해결사로 전면에 등장했다.
정부가 이날 김 비서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후 신속하게 통일부 장관 명의의 조의를 표명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 정부와 중국 또한 김 비서에 대해서 만큼은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며 “그의 공백으로 북한이 당분간 대남ㆍ대외관계를 매끄럽게 풀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정부는 ‘포스트 김양건’으로 누가 낙점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선 북한의 대남분야 2인자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나 실무총책인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 겸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후보로 꼽힌다. 반면 북한이 이날 발표한 장의위원 서열에서 원 부부장보다 앞선 김완수 통일전선부 부부장 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장이 유력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와 달리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당중앙위원회 비서를 맡다 실각된 최룡해가 이번 장의위원 명단에 6번째로 이름을 올리면서 복권이 확인된 만큼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원동연, 맹경일 등은 실무전문가이기 때문에 김양건처럼 힘을 받고 있는 측근 인사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비서가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건강악화로 국제비서의 역할까지 맡아온 점을 감안하면 최룡해의 역할론에 더 무게가 실린다. 최룡해는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북한 대표로 참석했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최룡해를 김양건 자리에 기용하면 대남관계는 물론 대중관계에도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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