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는 곳엔 으레 장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필요한 걸 나누고 얻었으며 삶의 요령과 기억들을 공유했다.
근대의 문이 열렸던 개항장이자 ‘비 내리는 호남선’의 종착역인 전남 목포. 일찍이 항구와 기차역으로 사람과 물산이 몰려들었고, 도시는 그 자체가 거대한 시장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시장의 도시 목포에 ‘남진야시장’이란 섹시한 이름의 장터가 문을 열었다고 해 찾았다가 도시의 오랜 시장들을 함께 둘러봤다.
목포의 시장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항구를 끼고 발달한 시장과 열차역 주변의 시장으로. 목포역 주변 가장 컸고 오래된 시장은 역 앞의 남교동 중앙시장이다. 지금 31층 높이의 트윈스타가 올라가 있는 부지 일대가 시장 터였다고 한다. 주상복합 건물이 올라가면서 중앙시장은 북항쪽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중앙식료시장과 먹통골목만 남아있다. 순대 족발 떡집 등이 이어져있는 먹통골목은 저렴한 가격에 따끈한 국물을 곁들여 대포 한잔 나누기에 딱이다. 허름한 시장 골목엔 긴 시간 쌓인 서민들의 땀과 정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듯하다.
목포역 뒤편에는 구청호시장이 있다. 목포에서 가장 활기차고 흥미로운 재래시장이다. 청호는 목포 앞 섬들로 둘러싸인 바다가 맑은 호수와 같다고 해 붙여진 목포의 애칭.
아크릴 지붕을 올리고 정형화한 간판과 매대를 갖춘 요즘의 재래시장들과 달리 구청호시장은 그야말로 옛 모습의 노천 시장이다. 시골 읍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정겨운 5일장의 풍경이 매일 펼쳐지는 곳이다.
긴 시간이 흐르고 도시가 성장하면서 시장도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목포역 앞의 중앙시장이 북항 신시가지 인근으로 간 것처럼 청호시장도 도심정비 등의 이유로 석현동으로 이주했다. 구청호시장 이름 앞머리에 ‘구’가 붙은 이유다.
하지만 강제로 해산됐던 목포역 뒤편의 청호시장은 오히려 더욱 규모가 커진 구청호시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관의 주도로 시장은 옮겨갔지만 그 시장에 인이 박힌 시민들의 마음은 쉬 떠날 수 없었다. 옛 청호시장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모여들었고, 시장은 조금씩 제 몸집을 찾아갔다. 사라진 청호시장터에 구청호시장이 부활하게 된 배경이다.
시장이 가장 활발한 시간인 이른 아침 구청호시장을 찾았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모여든 상인들이 길가를 빼곡하게 채웠고 그 대열이 끝없이 이어졌다. 노천의 길가 큰 고무대야와 채반 위에 놓고 벌이는 좌판엔 각종 생선과 채소류가 그득하다. 지긋한 연세의 상인들은 장작을 때 추위를 버티며 좌판을 지키고 있다. 부지런한 시민들이 새벽 시장을 가득 메워 북적거렸다. 선거운동을 하러 나온 예비후보자들까지 시장에 활기를 더했다.
구청호시장의 가장 큰 매력을 물었더니 현지인은 목포에서 가장 싼 곳이라고 했다. 찬바람 부는 이른 아침 구청호시장을 가득 채운 이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또 한 푼이라도 더 아끼겠다고 나선 이들이다.
질기고 질긴 생의 힘이 겨울의 차가운 새벽을 버티게 한 것이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거리의 좌판을 지켜내는 힘 말이다. 구청호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억센 삶의 현장에서 생을 버텨낼 위안과 동력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목포 산정동에 있는 자유시장의 원조는 구청호시장 인근의 대로변이라고 한다. 과거 도깨비시장으로 유명했던 시장이었다. 당시 목포 주변의 무안 함평 임성 사창 몽탄 등에서 열차를 타고 온 노점상들이 새벽부터 시장을 열었다가 오후 1시가 되면 싹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주변을 정리하면서 199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사 온 자유시장은 나름 장사가 잘 됐었지만 시내에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침체의 길을 걷게 됐다. 목포시가 자유시장을 살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지난 11일 ‘남진야시장’을 출범시켰다.
목포 출신 유명 가수인 남진의 이름을 딴 야시장은 매 주말 휘황하게 불을 밝히며 축제의 밤을 만들고 있다. 자유시장내 통로에 매대 50여개를 새로 조성, 산뜻한 아이디어를 지닌 젊은 상인들에게 내주었다. 금요일 밤에 찾은 남진야시장엔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닭강정 홍어전 등 맛난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문화와 함께 어우러지며 보고 먹고 즐기는 밤의 축제다. 어묵 등을 파는 매대에선 잔술을 팔며 시장의 흥을 북돋았다.
목포=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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