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과 전개가) 너무 뻔하다”는 평이 종종 따른다. “완성도가 높지 않다” “한국영화의 평균을 깎아 먹는다”는 비아냥도 간혹 듣는다. 특히 영화 좀 본다 싶은 사람들의 평이 박하다. 하지만 시장에선 환대 받았다. 남녀상열지사를 앞세운 선정적인 내용을 다루거나, 충무로에 보편화한 잔혹 묘사를 활용하지도 않는다. 자극적이지 않고 평단의 뜨거운 지지도 없는데 제작사 JK필름의 영화를 보기 위해 대중은 기꺼이 줄을 선다. 지금 충무로가 품은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다.
최근 JK필름의 활약은 휘황하다. 지난해 말 개봉한 ‘국제시장’은 1,426만1,582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찾으며 역대 흥행순위 2위에 올랐고, 지난 16일 선보인 ‘히말라야’는 28일까지 440만1,717명이 봤다. ‘히말라야’는 600만 관객도 가능한 흥행 추세다. 1년 사이 한 제작사가 2,000만 관객을 모으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질 태세다. JK필름은 어떻게 무엇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흥행 성공률 80%의 성적표
JK필름 간판을 걸고 첫 선을 보인 영화 ‘해운대’(2009)는 1,145만3,338명이 관람했다. ‘하모니’(2010)가 306만8,544명을 모았고 ‘퀵’(2011)은 312만5,069명이 찾았다. ‘댄싱퀸’은 405만8,225명이 보며 흥행했다. ‘해운대’에서 ‘히말라야’까지 JK필름이 선보인 영화 10편 중 손해를 본 영화는 ‘시크릿’(2009)과 ‘7광구’(2011) 딱 2편이다. ‘고위험 고수익’ 업종으로 분류되는 영화업에서 흥행 타율 8할은 경이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수익을 남긴 영화(26.9%)는 10편 중 3편도 되지 않았다.
JK필름의 전신 두사부필름의 흥행 성적표도 우등생급이었다. ‘1번가의 기적’(2007)을 비롯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요일’(2005) 등이 3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투자자들을 기쁘게 했다. 제작 영화 5편 중 ‘낭만자객’(2003)만 적자를 봤다.
제작도 꾸준하다. 돈 좀 벌었다고 신작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충무로에선 드물게 매년 한편 꼴로 신작을 선보인다. 한 투자배급사의 관계자는 “흥행이나 제작 편 수, 운영체계를 따졌을 때 한국영화계에서 제작사다운 제작사는 JK필름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주류 아닌 주류, 충무로를 접수하다
JK필름의 설립자인 윤제균 감독은 엘리트 영화인이 아니다. 정규 영화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연출부 생활도 하지 않았다. 광고회사에 다니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되며 충무로에 발을 디뎠다. 2005년부터 윤 감독과 동업하는 길영민 JK필름 대표도 평범한 회사원 출신이다.
JK필름의 축이라 할 두 사람은 영화적 지식이나 영화에 대한 환상이 적은 대신 예술가적 자의식에서 자유롭다. 고담준론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내용을 스크린에 옮긴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감독이 주도권을 잡거나 시장을 중시하는 제작자가 지휘하는 여느 제작사와 의사결정 과정도 다르다. 중학생 시절부터 교유한 30년 지기 윤 감독과 길 대표의 남다른 관계가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길 대표가 윤 감독이 싫어할 만한 고언을 아끼지 않으며 회사의 중심을 잡는다”며 “사업적 관계로 만난 사이라면 갈등을 빚다가 진작에 결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JK필름이 편애하는 배우를 보면 JK필름표 영화의 특징을 가늠할 수 있다. 황정민(‘댄싱퀸’ ‘국제시장’ ‘히말라야’), 설경구(‘해운대’ ‘스파이’), 김인권(‘해운대’ ‘퀵’ ‘히말라야’ 등), 강예원(‘해운대’ ‘하모니’ ‘퀵’) 등은 빼어난 얼굴을 앞세운 배우들이 아니다. 서민적인 풍모만으로도 관객을 웃기거나 울리기에 적합하다. 길 대표는 “일부는 ‘의리 캐스팅’ 아니냐고 하나 인간적이고 망가질 수 있는 배우들이 어울릴 만한 영화들을 주로 만들다 보니 비슷한 배우들과 작업을 많이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영화 퇴행” 부정적 시선도
상식적인 선을 넘지 않으며 대중들에게 감동과 호감을 전하는 것도 JK필름이 지닌 상업적 강점이다. “1990년대 후반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충무로 흥행 공식을 바꿨다. 신파적 눈물과 감동에 스펙터클을 더해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윤 감독(과 JK필름 영화)은 그 변형이다. 웃음과 가족 관계를 더 강조하나 강 감독의 영화와 근본적으로 똑같다. 과도한 표현도 피하니 호감도가 높아 네티즌 평점을 8점 이상 받곤 한다.”(영화평론가 김형석씨)
충무로 최대의 큰손 CJ E&M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많은 덕을 보고 있다는 분석도 따른다. 영화 자체가 지닌 상업적 힘이 흥행의 가장 큰 요인이나 CJ E&M의 배급력이 개봉 주 흥행몰이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을 제외하면 JK필름 영화들은 모두 CJ E&M이 투자배급했다. 길 대표는 “안정적인 회사 운영을 위해 한 투자배급사랑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좋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JK필름의 승승장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작품성만 놓고 보면 퇴행에 가깝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학술적이거나 미학적인 영화를 보지 않으려는 대중들의 기호와 맞아떨어지며 JK필름 영화들이 흥행하고 있다”며 “JK필름이 한국영화를 상업적으로 확장시키면서도 퇴행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