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설원을 넘으면 치즈는 꽁꽁 얼었다. 빵에 찍어지지가 않는 치즈를 하이디의 조상들이 불에 끓였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따끈하게 녹은 치즈는 온갖 것을 찍어먹기에 좋았다. 뻗어나간 산맥을 타고 퐁듀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 인접 국가로 퍼져나가며 형태가 변화했다. 한국에서는 갈빗살을 구워 찍어먹을 정도로 퓨전화했다.
눈보라 치는 창 밖을 바라보며 따스하게 먹는 음식 퐁듀를 스위스 정통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스테판 뫼트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의 총주방장이 스위스 정통 레시피를 그대로 구현한 퐁듀를 호텔 내 제이제이 델리에서 선보인다. 매주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점심까지, 겨울시즌 동안만 운영하는 팝업 스토어 형식이다. 메뉴는 오리지널인 치즈 퐁듀를 비롯해 오일 퐁듀, 수프 퐁듀, 초콜릿 퐁듀 등 모두 4가지다.
뚝배기에 화이트와인을 끓이다 잘게 썬 치즈를 넣어 만드는 치즈 퐁듀는 17세기 시작됐다. 따뜻하게 녹아 내린 치즈가 고소한 냄새를 한껏 풍기면 잘 익은 고기나 감자, 각종 꼬치를 찍어먹는다. 든든한 포만감 덕분에 겨울철 보양식으로 꼽히는 음식이다. 와인과 함께 즐기면 더욱 깊은 풍미를 음미하며 몸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오일 퐁듀는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뫼트 총주방장이 강력 추천하는 음식. 치즈 대신 뜨거운 기름을 냄비에 담아 쇠고기 또는 야채를 넣고 튀기듯이 익혀먹는다. 고기튀김이라니 보기만 해도 느끼하지만 의외로 담백하고, 기름이 고기 사이에 스며들어 육질도 부드럽다. 각기 다른 5가지 소스에 찍어먹는다. 스위스에서는 퐁듀 부르고뉴라고 부르는데, 프랑스 지역 부르고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수프 퐁듀는 끓는 육수에 고기, 야채, 버섯 등을 함께 넣고 익혀 건져 먹는 스위스식 샤브샤브다. 중국의 훠궈와 비슷해 퐁듀 시누아즈, 즉 중국식 퐁듀라고 불린다. 초콜릿 퐁듀는 우유와 생크림을 넣고 끓이다가 녹인 초콜릿을 넣어 만든다. 여기에 마시멜로와 과일, 빵 등을 꼬치에 꿰 찍어먹는데, 메인 요리라기보다는 일종의 디저트 메뉴다. 가격도 다른 퐁듀들이 7만5,000~7만8,000원인 데 반해 5만6,000원으로 낮다.(2인 기준) 운영 시간은 점심은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저녁은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퐁듀는 만드는 방식이 간단하지만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아 연말 또는 신년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 내놓기도 좋다. ‘녹인다’(fondre)는 의미의 프랑스어 어원처럼 따뜻한 불에 녹여낸 치즈, 초콜릿, 오일 등에 갖가지 신선한 재료를 찍어먹으면 된다. 뫼트 총주방장은 “한국에서는 퐁듀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값비싼 음식으로 여겨지지만 부담스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스위스 대표 치즈인 에멘탈 치즈와 그뤼예르 치즈를 약한 불에 뭉근하게 녹여 바게트 빵, 야채 등과 찍어먹으면 한국인에게 대중적인 치즈 퐁듀가 된다”고 말했다. 화이트와인을 먼저 넣어 끓여야 하지만 없으면 안 넣어도 무방하다고. “치즈가 지닌 풍부한 향과 냄비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열기, 깔끔한 맛의 화이트 와인이 함께하면 몸을 따뜻하게 보해줄 최고의 음식이 될 겁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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