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대한부인종양연구회 회장
얼마 전 외래에서 이제 막 항암치료를 시작한 난소암 환자 김모씨를 만났다. 이미 암이 복막과 림프절까지 전이가 상당히 이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수술 후에도 복수로 배가 남산만해져 있었다. 표적치료제를 쓰면 증상이 완화될 거라 설득했지만, 그녀는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해 한 달에 몇 백 만원씩 하는 약으로는 더 이상은 치료를 할 수가 없다며, 왜 하필 치료약이 없는 난소암인건지 하늘을 원망하게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난소암은 치료 성적이 약 20년 전과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표적인 난치성 암이다. 난소암은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암이 진행되기까지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검진이 어려워 환자의 절반 이상이 치료가 까다로운 말기에 암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90%에 육박하나 말기로 가면 11%까지 급격하게 떨어진다. 또한 암을 발견했을 때 이미 다른 장기까지 암이 전이된 환자 비율이 유방암에 비해 10배가량 높고 대부분의 환자가 1차 치료를 받더라도 진단 시기를 기준으로 15개월을 전후해 암이 재발하게 된다.
암이 재발하게 되면 환자는 항암제를 바꿔가며 항암 치료를 받게 된다. 하지만 항암 치료 차수를 거듭할수록 치료 효과는 떨어지고 위험한 합병증의 위험은 높아진다. 이에 따라 난소암은 재발되기 전 첫 번째 치료, 즉 1차 치료가 생사를 결정짓는 ‘골든 타임’이다.
문제는 단 한번 뿐인 골든 타임인 1차 치료 시기에 사용할 수 있는 허가 된 표적 치료제가 오직 1개라는 점이다. 재발이 쉬운 고위험 환자와 진행성 난소암 환자의 특징인 복수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는 더욱 절실한 치료제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보험 급여에서 제외되어 있어 한 달에 몇 백 만원이나 드는 약값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환자의 경우 표적 치료제 대신 약 10~20년 전 개발된 항암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난소암 환자는 삶의 기로에서 촌각을 다투는데 난소암 치료의 시계는 20년 전에서 멈춰버린 셈이다.
한편 최근 국내에서도 허가된 BRCA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재발성 난소암 치료를 위한 표적치료제도 현재 급여가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난소암은 보장성 정책의 사각지나 다름 없다. 암도 ‘복불복(福不福)’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국내에서 특정 치료제가 보험 급여를 받기까지는 환자수, 치료제 데이터, 재정 영향 등 여러 가지 숫자가 고려된다. 하지만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다. 바로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란 숫자이다.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 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통해 효율적인 복지 체계를 구축해가고 있는데, 성과를 거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난소암과 같이 보장성 강화 정책에서 소외되어 있는 질환까지 제도적 지원을 넓히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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