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이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공권력에 국민이 희생됐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어요.”
천주교 의정부교구 환경농촌사목위원장인 이현섭(46) 신부는 28일 ‘박근혜정부의 폭력을 고발하는 시국미사’를 앞두고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전국 교구의 신부들이 현 정부의 폭력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시국미사를 준비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미사는 서울, 대구, 대전, 의정부 교구와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와 남자수도회 사도생활관 장상연합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가 함께 모인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수원, 광주, 전주, 부산, 마산 등 전국 9곳에서 동시에 열렸다. 미사를 알리는 포스터 한복판에는 ‘국가 폭력에 쓰러진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와 민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적었다.
광주대교구 가톨릭농민회 회원인 백씨는 지난달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한 달 보름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신부는 “정부가 우리 사회의 근간인 농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권리를 찾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 동시 미사는 각 교구의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담당 신부들이 주도했다. 천주교가 농업에 관심 두는 이유에 대해 이현섭 신부는 “농업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민은 하늘의 뜻에 따라 살며 농사 짓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한 분들이 기층 민중, 그 중에서도 농민이지만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값싼 수입 농산물로 권리가 축소됐어요.” 그는 “화학농법으로 지은 농산물 때문에 국민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며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대량 수입하면서 정작 유기농법으로 우리 밀과 쌀을 지키려는 농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건 이율배반”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단체들은 이날 미사에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백씨에게 가한 경찰의 폭력에 대해 “전시에서도 해서 안 되는 반인륜적인 폭거이며 범죄”라며 현 정부는 “공권력의 남용으로 오히려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폭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독재 시절 민중항쟁에 덧씌우던 소요죄를 들고 나와 국민들을 협박하고 무차별 소환장 발부로 탄압에만 열중”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국 동시 미사를 연 이날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축일’이다. 동방 박사들에게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해 들은 유대왕 헤로데(헤롯)가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모두 죽였다는 성경 속 비극을 애도하는 날이다. 이현섭 신부는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성경 속의 그 아이들이 지금의 농민,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이라면 정권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우리 민중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종교계의 지나친 정치 참여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삶과 신앙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며 “교황이 말씀하셨듯 좋은 신자가 되려면 정치에 간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님도 마구간에서 가장 가난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태어나 권력에 저항하고 기득권 세력에 올바른 이야기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번 미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인간의 권리가 문제가 될 때 신앙은 우리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걸 말하고 싶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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