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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 아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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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 아이의 꿈

입력
2015.12.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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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은 삼 년 전이다. 가까운 지인의 조카였다. 당시 여자중학교 3학년으로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별 말 없는 진중한 성품이었다. 이틀간 보았는데 큰 소리 낸 것은 커다란 전갱이를 낚아 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감탄사뿐이었다.

특이한 것은 골프를 한다고 했다. 골프라는 게 스포츠 뉴스 시간에 날마다 나올 정도로 유명한 스포츠이지만 나는 채 한 번 만져본 도 없고 점수 계산을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그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도 처음 만난 거였다. 그러니 신기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이는 차분한 어투로 조목조목 대답해주었다.

듣자니 실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겉모습과 달리 밤을 꼬박 새우며 연습을 하는 악바리 기질이 있단다. 그렇게 훈련을 해야 하면 힘들 텐데 골프 하는 게 행복하냐고 묻자 정말 행복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골프는 특히 ‘멘틀(mental)’이 좋아야 한다고 들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리광이나 호들갑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며 뛰어난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사인을 받아둘까 고민도 했다. 역시나 아이의 미래 목표는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고 당장은 골프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그런 고등학교가 있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성장 중인 한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하기 위해 어디로 가겠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것 아닌가. 주변의 강압과 과도한 요구에 의해 정작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조차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요즘 세태에 자신의 꿈을 착실히 키워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공연히 흐뭇해졌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무난하게 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성품대로 아이는 성실했다. 1학년 내내 전교 1등을 포함하여 5등을 벗어나지 않았고 전교생 중 딱 한 명에게만 주는 선행상도 받았다. 학교 글짓기 대회에서도 매번 상을 탔다(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나는 아이와 글짓기에 대해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2학년 1학기까지 3학기 동안 특기장학생으로 발탁될 만큼 골프 실력도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최근 두 달 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단다. 당장, 지난 9월에 있었던 2학기 특기생 선발전에서 1라운드 1등, 2라운드 2등, 이렇게 해서 최종 2등으로 마쳤는데도 특별한 이유 없이 특기생을 박탈당했다. 들어보니 그 동안 여러 사건이 있었다. 다른 아이와 어깨가 부딪히는 사소한 일로 인해 두 달 동안 매일 반성문을 써야 했고 툭하면 경찰서와 교무실로 불려 다녀야 했다.

모 여성 레슨 코치는 뽕을 세 개는 넣었을 거라며 아이의 가슴을 강제로 만졌다. 그것도 남녀 학생들 단체집합 시간에. 일은 더 있었다. 옷을 빌려간 친구가 여자 기숙사 점검에서 라이터를 들켰다(아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 코치는 옷 빌린 친구를 자기 방으로 불러 이렇게 하면 아이를 전학 보낼 수 있으니 진술서를 쓰라고 종용했다. 그 친구는 결국 아이를 말도 못할 나쁜 학생으로 묘사하여 진술서를 작성했다. 코치들이 다른 학생에게 자신에 대해 험담하는 것은 여러 번이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아이는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선생(감독ㆍ코치)님들이 자신 라인의 학생만 챙기기 때문에 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무시당한 것은 그 선생님들의 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애제자들을 위해 다른 학생들을 견제하는 것이다. 똑같이 당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들은 더 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참 큰일이다.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인맥 학맥을 통한 체육계의 비리. 심지어 자기 자식의 진학을 위해 로비를 펼치고 그게 통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아이의 꿈은 이대로 좌절되는 것일까.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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