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교 지킨 영웅 박상돈 소방위 등 5명 1계급 특진
강풍속 맨몸으로 100여m 주탑 올라 화재진압 2차 피해 막아
"두렵고, 또 두려웠지만 2차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난 3일 발생한 서해대교 주탑 케이블 화재 현장에서 맹활약한 평택소방서 119 구조대 소속 박상돈 소방위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아찔했던 상황을 전했다.
박 소방위가 서해대교 현장으로 출동 중이던 이날 오후 7시께 "센터장님이 케이블에 맞고 쓰러졌다"는 내용의 무전이 흘러나왔다.
박 소방위는 "지난 2000년 항공대에서 만나 평택소방서에서도 구조대장으로 모시던 故 이병곤 소방령이 다쳤다는 말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아무런 장비 없이 순수 인력만으로 불을 꺼야 할 상황이었다"고 끔찍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화재는 까마득히 높은 주탑 부근에서 발생했다. 케이블을 녹이며 맹렬한 기세로 불길이 번졌다.
하지만 짙은 어둠 속에 진눈깨비를 동반한 강풍이 휘몰아쳤다. 자칫 전복하거나 추락할 위험이 커 고가 사다리차를 쓸 수 없었다. 소방헬기 역시 띄울 수 없었다.
첨단 화재 진압 장비들이 무용지물인 상황에서 박 소방위는 이태영·김경용 소방사와 함께 맨몸으로 100m 높이의 서해대교 2번 주탑에 올랐다. 안전고리에 몸을 의지한 뒤 로프를 아래로 던졌다.
밑에 있던 대원들은 소방호스 13본(1본 15m)을 엮어 박 소방위가 던진 로프에 묶었다.
유정식 소방장과 박상희 소방사는 줄다리기를 하듯 소방호스를 주탑으로 끌어 올렸고, 이를 건네 받은 이태영·김경용 소방사는 주탑 가로보 10여m 아래 불타고 있던 케이블을 향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박 소방위는 "100여m 높이의 주탑은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어 소방관이라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며 "바람이 강하게 부는데다 진눈깨비 때문에 바닥도 미끄러웠다. 대원들에게 '자신의 안전부터 지켜라'라고 수차례 외쳤다"고 말했다.
화재 진압이 시작된 이후에도 역시 강한 바람이 문제였다.
불 붙은 케이블도, 관창을 통해 뿜어진 소방수도 바람이 부는대로 상하좌우로 계속 흔들렸기 때문이다.
박 소방위는 "소방 입문 23년 동안, 교량 화재 현장은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며 "다행히 올해 들어 故 이병곤 소방령이 영종대교 106중 추돌 사고 이후 교량 사고와 관련한 교육훈련 자료를 건네 줘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 소방위는 작전을 바꿔 화점이 아닌 주탑 가로보 아래로 방수해 물줄기가 케이블을 타고 흘러가도록 해 불길을 잡으면서 1시간여 만에 진압에 성공했다.
박 소방위는 "오로지 반드시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불을 끄는 것은 소방관의 사명이고, 2차 피해를 막아야 했다. 또 무엇보다 故 이병곤 소방령이 이송된 병원에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경기도는 서해대교 화재 당시 악조건 속에서 사투를 벌인 박상돈 소방위, 유정식 소방장, 이태영·김경용·박상희 소방사 등 5명을 각각 1계급 특진시키기로 했다.
박 소방위는 "2년 선배인 故 이병곤 소방령 생각이 나서 특진에도 마음이 착잡하다.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눈에 선하다"며 "목숨을 걸고 뛰어든 화재 현장에서 내 지시 그대로 따라준 대원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하고 싶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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