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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의 글 계속 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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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의 글 계속 낼 것”

입력
2015.12.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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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자기록’ 필사본을 보여주는 부수영 나의시간 대표. 1인출판사의 첫 작품으로 이 책을 직접 기획하고 편집했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그림 1 ‘자기록’ 필사본을 보여주는 부수영 나의시간 대표. 1인출판사의 첫 작품으로 이 책을 직접 기획하고 편집했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정성을 다해 만든 책이 바로 이런 것이다. 편집 부문 수상작 ‘자기록’은 지극정성으로 받들어 올리는 귀한 선물 같은 책이다.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공들여 만든 게 그대로 보인다.

‘자기록’은 조선시대 양반가 여인, 풍양 조씨(1772~1815)가 나이 스물에 동갑내기 남편을 사별하고 이듬해 자신의 기구한 생애를 돌아보며 피눈물로 써 내려간 글이다. 평생 수절은 기본이요 따라 죽어서 열녀가 되는 게 당연했던 그 시절에 차마 불효를 저지를 수 없어 끊지 못한 삶을 ‘훔친 목숨’이라 부르며 남긴 통한의 기록이다. 남편의 발병과 오랜 투병, 요절에 이르는 과정에 겪은 고통과 두려움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과 대를 이를 아들을 낳으려고 애쓰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 등을 풀어냈다. 삶과 죽음에 예를 다하는 곡진함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울림을 준다. 병상일지로 봐도 좋을 만큼 기록이 치밀하고 당시 여성과 생활사를 보여주는 사료이기도 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를 맞이하다.’ 책을 펴낸 부수영(56) 나의시간 대표는 올해 초 출간 직후 한 잡지에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년 만에 독자를 만나는 한 많은 여인을 극진하게 모시는 마음의 표현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 “기대도 안 했는데 뜻밖”이라고 기뻐했지만, 심사위원들은 노련한 편집자의 엄청난 내공이 담긴 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필사본으로 전하는 원문은 순한글이지만 고어인 데다 고사에서 비롯된 낯선 표현이 많다. 조선시대 여성과 생활사 연구자들이나 보던 것을, 고전문학을 전공한 김경미 이화여대 HK교수가 일반 독자들을 위해 현대어로 옮기고 꼼꼼하게 주를 달았다. 현대적 감각의 독특한 표지와 단정하면서 품위 있는 본문 디자인은 아트디렉터 안지미씨의 작품이다. 장을 구분하고 소제목을 달아 가독성을 높이고 전체를 조율한 것은 부 대표의 공이다. 279쪽 분량의 책에서 절반 넘게 원문을 실어 연구자도 자료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고전의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재구성을 한 책이 많지만, 이제는 원텍스트를 제대로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혀야죠.“

나의시간은 신생 1인출판사고 ‘자기록’은 첫 책이다. ‘여자, 글로 말하다’라는 기획의 첫 작품으로 ‘자기록’에 이어 병자호란 당시 양반가 노부인의 피란기 ‘병자일기’를 낸 게 전부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남긴 글을 보면 자존감이 대단해요. 알려진 것도 있지만 묻힌 게 많죠. 특별한 재능을 지녔던 뛰어난 여성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여자들의 글쓰기를 알리는 책을 계속 내고 싶습니다. 사실 이런 작업은 작은 출판사나 개인이 하기는 어렵고 큰 출판사가 긴 호흡으로 하면 좋은데…. 일단 ‘자기록’으로 시리즈의 포석을 깔았지만 너무 큰 주제를 잡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심사위원들이 편집자의 내공을 포착해낼 만도 한 것이, 그는 30년 경력의 편집자다. 창비에서 1982년부터 96년까지 일하며 편집의 기본을 배웠다. “창비를 이끈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내겠다고 두려운 마음으로 늘 다짐한다”는 그는 “뛰어난 역주자를 비롯해 아트디렉터, 고어와 한자를 처리한 전문 오퍼레이터 등 보이지 않는 여러 손길이 이 책을 완성했다”며 공을 돌렸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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