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관계가 풀리면서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발생한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 피해자들이 36년 만에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됐다. 이란 핵협상 타결로 적대적인 미국과 이란 관계에 해빙 기류가 형성된데다가 피해자들을 지원할 재원도 마련됐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24일 미 의회가 지난 18일 승인한 ‘2016 회계연도 예산안’을 통해 당시 인질사건 피해자들의 숙원이던 금전적 보상방안의 법적 토대가 갖춰졌다고 보도했다.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사건은 이슬람 혁명 이후 독재자 팔레비 이란 국왕을 지원하던 미국에 대한 분노가 격화되던 1979년 11월4일 시위대가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 직원 53명을 444일 동안 인질로 붙잡았던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나라는 1980년 4월 국교를 단절했고,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하면서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재선 도전에서 고배를 마시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인질은 질병 때문에 먼저 풀려난 한 명을 제외하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1981년 1월20일 52명이 석방됐다. 억류 중 일부 인질은 신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질 석방자들은 이후 줄기차게 보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양국 정부가 맺은 인질 석방 협상안에 보상을 가로막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바람에 관련 소송마다 패소했다. 이란 정부도 보상을 이행하지 않았고, 미국에서도 예산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 프랑스 BNP파리바 은행이 국제 경제제재를 무시하고 이란, 수단, 쿠바 등과 금융거래를 한 게 들통 나면서 재원 마련이 가능하게 됐다. 이 은행이 미 정부에 낸 90억달러 벌금 중 10억달러를 테러 희생자 보상기금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미 정부에 따르면 보상금액은 인질 1명당 하루 최고 1만 달러(1,170만원)까지다. 444일을 대입하면 산술적으로 개인당 444만달러(52억원)까지 가능하다.
풀려난 인질 53명 중 생존자는 37명이며, 사망자 보상금은 유족이 수령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대상자들이 모두 보상금 전액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고 전했다. 피해자를 대리해 보상을 추진해온 토머스 랭크포드 변호사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정부가 배후인 테러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선례를 만들어내는 것도 핵확산 금지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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