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취업성공패키지’ 상담
구직자 맞춤은커녕 겉핥기식
상담원 업무량 과다에 낮은 대우
취업률 높여야 성과급 받는 구조
세무사사무소 경리직을 목표로 구직 중인 서모(23)씨는 최근 정부 취업지원 프로그램의 상담을 받고 크게 실망했다. 올해 6월 일반회사 경리 일을 그만둔 서씨는 보다 전문성을 인정받는 세무사사무소 경리로 재취업하기 위해 전산세무ㆍ회계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기대를 품고 찾아 간 상담원은 “쓸데없이 시간 낭비 말고 일반기업에나 취직하라”며 면박을 줬다. 심지어 “다른 고졸 출신들은 일반회사 경리로 차곡차곡 경력을 쌓고 있는데 혼자만 높게 기준을 잡았다가 후회할지 모른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서씨는 24일 “상담원으로서 조언을 해주기는커녕 내 존재를 짓밟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말했다.
서씨가 이용한 상담 프로그램은 고용노동부가 운영 중인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이다. 올해로 시행 7년 차에 접어든 이 프로그램은 저소득층이나 청년층에게 3단계에 걸쳐 취업상담, 직업교육지원금, 일자리 알선서비스를 제공한다. 연간 예산도 2,700억원이나 투입된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전담 상담원이 진행하는 1대1 맞춤식 상담이다. 그러나 참여자의 적성과 희망진로를 감안해 상담을 제공한다는 원래 취지와 달리 상담원들이 취업률을 높이는 데만 급급해 정작 구직자의 개별 사정은 외면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제로 취업정보카페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씨처럼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에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연예기획 분야 취업준비생 A씨 역시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에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 졸업생인 그는 올해 8월 고용센터에 상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상담원은 A씨가 그동안 지원해 온 기업들을 듣고선 “‘SKY’(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도 취업 못 하는데 그냥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추라”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연봉 2,000만원대 초반의 일자리를 소개해줬는데, 그나마도 급여 말고는 회사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 결국 A씨는 상담 한 달 만에 프로그램을 중도 하차했다.
이처럼 상담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취업성과도 신통치 않다. 지난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19만3,745명 중 6만7,511명(34.8%)은 미취업 상태로 참여를 중단하거나 종료했다. 그나마 취업에 성공해도 일자리 질이 낮은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프로그램 참여자의 전체 취업률은 55.2%였으며, 월 급여 150만원 이상인 일자리의 취업률은 17.6%, 6개월 간 고용이 유지된 비율도 33.6%에 그쳤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순히 일부 상담원들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지역고용센터 상담원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운영되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서영진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부지부장은 “‘상담원 1명이 최대 120명까지만 상담한다’는 노동부 방침이 있지만 일선에선 150~200명은 기본이고 많게는 300명을 맡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구직자의 세부 적성을 파악하는 등 심층 상담을 하려면 최소 30분은 상담해야 하는데 업무량 과다로 불가능하다는 항변이다. 서 지부장은 “기본급이 연간 1,600만원대에 불과해 취업률 평가로 주어지는 성과급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상담을 주관하는 노동부 산하 지역고용센터의 경우 인력 수급문제로 간혹 할당 인원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맞다”면서도 “서울이나 특정 시기에 한정된 예외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김혜원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담사 충원이 전제되지 않으면 예산 확대는 무의미하다”며 “상담기관이 취업률 같은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게 질 좋은 일자리 알선에 성과급을 부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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