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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이 슬픔을 갱신하기 위하여

입력
2015.12.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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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중구 YWCA 강당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한 유가족이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흐느끼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16일 오후 서울 중구 YWCA 강당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한 유가족이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흐느끼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세월호의 아이들 앞에선 누구도 무신론자가 될 권한이 없다. 신은 존재해야만 한다.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신은 반드시 천국의 주재자여야 한다. “호성아,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나는 너를 꼭 다시 만나서 같이 살고 싶어”(‘금요일엔 돌아오렴’ 중) 흐느끼는 이 엄마 앞에서 우리에겐 유물론자가 될 자격 같은 게 없다. “여기(가슴)가 너무 아파서 누가 때려줬으면 좋겠다”고, “여기가 짓눌려 죽을 것 같다”고 울음을 터뜨린 승희 아빠 앞에서 우리는 신 없는 세계를 용납할 수 없다.

4ㆍ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가 지난주 있었다. 국회도 아니고 YWCA 강당에서, 그것도 여당 추천위원은 전원 불참한 채 열린 첫 번째 청문회는 지상파 TV에서도, 종합편성방송과 뉴스전문방송에서도 중계되지 않았다. 인터넷 방송 몇 곳을 통해 가까스로 ‘유출’됐을 뿐이다. 성과는 없지 않았다. 사건 당시 ‘전원 퇴선하라’는 안내 방송을 했다는 해경의 거짓말이 김석균 전 해경청장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500명의 잠수 인력이 투입됐다는 해경의 발표가 “전국에서 동원 가능한 숫자”를 말한 것일 뿐 청와대 보고 인원은 8명뿐이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 ‘다시’, 세월호 엄마들의 눈물이 있었다.

용기가 없어 미뤄뒀던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펼쳤다. 읽는 고통 정도도 함께 짊어지지 못하면서 슬픔의 연대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작가들이 기록단을 꾸려 쓴 이 유가족 육성기록은 그야말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고통”으로 빼곡했다. 팽목항의 차디찬 바다 앞에서 “이놈의 새끼가 갔나봐… 결국 갔나봐” 단말마를 토해내는 아버지와 번호가 돼 돌아온 아이의 많이 다친 모습을 말해야 하는 엄마. “자다가 새끼가 있나 방문 열어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을 때, “가장 오래 남는 게 냄새라는데, 이불에서도 냄새가 안 난다”며 울먹일 때, “너무 힘들면 아이가 신던 신발을 신고 아이가 걷던 길을 걷는다”고 고백할 때, 다음 줄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안 끝났냐고 묻는 이웃들에게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어떻게 끝내냐’고 울음을 참고 설명해야 할 때, “잊히는 게 무섭다”고, “이것마저 안 하면 다 끝났다고 인정해 버릴까봐, 그러면 내 자식한테 더 죄를 짓는 거 같아 이렇게 외치는 거”라고 호소할 때, 독서는 자꾸 지체됐다.

그 많던 슬픔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망각도 사람의 일이어서 힐난은 옳지 않다. 그저 처음처럼 다시 슬퍼하기 위한 ‘애도의 노동’이 필요할 뿐이다. 상투화하고 추상화한 슬픔의 각질을 깨고 이 슬픔을 갱신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겐 있다. “나는 또 이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건우를 만나고 싶어. 다시 택한대도 나는 건우 엄마를 택할 거야. 그 17년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시 또 기회가 생기면 건우를 또 만나 그 시간을 다시 건너고 싶다고.” 우리는 이 엄마를 위해 다시, 처음처럼, 새롭게 슬퍼해야 한다.

“아빠 수인이가 못 견디게 보고픈 날엔/ 코를 킁킁거려보세요/ 제 발냄새가 날 거예요/ 제 땀냄새가 날 거예요// …우리 이제 모두 함께 따스한/ 숨결 모아 열아홉 개의 촛불을 불어요/ 마음속 소망의 별빛이 더 환히 빛나도록/ 모두의 서러운 이마를 수인이가 쓰다듬어드릴게요… // 이 막막한 슬픔의 바다를 건너/ 봄날뿐인 우주에서 우리/ 다시 만나 꼬옥 끌어안고/ 사랑해요 고마워요/ 반짝이는 별빛이 될 때까지/ 사랑해요.”(‘엄마. 나야.’ 중)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부모들을 위해 시인들이 아이들의 생일에 쓴 시들이 때마침 책으로 묶여 나왔다. 울지 않곤 읽을 수 없는 이 책을 용기 내 읽자. 루시드 폴의 새 노래 ‘아직, 있다’도 따라 부르자. 젖은 옷을 갈아입고 푸른 초원을 뛰어다니던 뮤직비디오 속 아이들을 떠올리며 노랫말을 흥얼거리자. 슬픔으로, 슬픔의 연대기로 우리는 신을 창조할 수 있다. 잊지 않겠다고 말해야 하는 때는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이 슬픔은 갱신되고 또 갱신되어야 한다.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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