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이 느껴지는 상태다.”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찰 수뇌부 인사가 언제쯤 발표될 것 같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보통 11월 중순 이후에는 치안정감 인사부터 시작해 경찰 인사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데 올해는 정부 부처의 중폭 개각과 맞물려 인사가 한참 늦어졌습니다.
인사가 임박했다는 경찰청장의 언급이 나오면서 경찰청 출입기자들은 기자간담회 당일 오후부터 인사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하지만 이튿날 낮까지 인사 소식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계속 미뤄지는 이유가 있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경찰청 담당자들도 딱 떨어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인사가 또 미뤄진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던 22일 저녁 7시. 기자는 우연히 이상원 경찰청 차장을 경찰청 로비에서 만났습니다. 이 차장은 어디선가 연락을 받고 급하게 사무실로 돌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차장이 서울경찰청장으로 옮기는 등 치안정감 6자리와 치안감 24명에 대한 인사가 났습니다. (이 차장은 당시 중요한 전화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날 밤 늦게 있었던 경무관 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번 치안감 이상 인사에 대해선 경찰대의 약진과 내년 8월까지 임기인 강 청장의 운신 폭이 넓어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경찰청을 출입하는 기자의 눈에 최근 상황과 맞물려 조금 더 뚜렷한 특징이 몇 가지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경찰청에서는 수사와 정보통이, 서울청에서는 경비통들이 대거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소요죄를 적용하는 등 불법폭력시위 수사를 강하게 밀어 붙였던 정용선 경찰청 수사국장은 치안정감인 경기경찰청장으로 승진 이동했고, 박진우 수사기획관(경무관)도 치안감인 수사국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집회ㆍ시위 정보의 헤드쿼터 역할을 했던 조현배 정보국장(치안감)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경남경찰청장으로 이동했고, 지난해 1월 경무관으로 승진했던 이주민 정보심의관(경무관)도 먼저 임명된 경무관들을 제치고 치안감으로 승진해 울산경찰청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서울경찰청에서는 집회ㆍ시위를 현장에서 관리했던 담당자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습니다. 먼저 집회ㆍ시위 관리 핵심인 이상철 경비부장(경무관)이 서울경찰청 차장(치안감)으로 수직 이동한 것을 비롯해 이기창 서울청 교통지도부장(경무관)이 경기경찰청 1차장(치안감)으로 승진했고, 장향진 서울경찰청 차장(치안감)도 경쟁자들은 제치고 충남경찰청장으로 영전했습니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경찰 인사를 앞두고 있었던 민중총궐기 대회가 임명권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이번 인사에서 또 다른 특징은 승진 대상자로 유력했던 황운하 서울청 생활안전부장(경무관)과 임호선 경찰청 새경찰추진단장(경무관)이 고배를 마셨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능력이나 경무관 승진 연도에서 밀릴 게 없는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경찰대 1, 2기인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예전부터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에 항상 앞장서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두 사람의 탈락이 경찰 수사권 독립 추진을 불편해 하는 쪽의 입김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시기가 늦어지면서 이런 저런 억측들이 무성했던 경찰 수뇌부 인사가 마무리 됐지만 결과를 두고도 한동안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갈 것 같습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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