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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건축가 대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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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건축가 대 건축사

입력
2015.12.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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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공사 감리를 관장하는 전문직업인을 일컫는 말이 두 개다. 건축가와 건축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음 하나 차이가 나는 이 둘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지만 건축계 내부로 들어오면 사정은 딴판이다. ‘ㄱ’과 ‘ㅅ’ 사이에는 꽤 심각한 간극이 도사리고 있다. 각각의 협회도 따로 있다. 건축가협회와 건축사협회다. 직능단체이자 이익단체인 두 협회에 씌워져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비교를 위해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건축가협회는 건축의 ‘문화적’ 자본을, 건축사협회는 ‘경제적’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모호하나 법적으로는 간단하다. 건축사협회의 구성원은 국내 건축사시험을 통해 면허를 획득한 이들로 한정된다. 반면 건축가협회는 회원의 자격을 “건축설계 및 교육 기타 건축 관련 분야에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소유하고 건축가로서의 인격을 갖춘 자”로 규정한다. 건축사 자격은 구속 요건이 아니다.

한편 국내외의 건축 대가를 일컬을 때 건축사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예컨대, 르 코르뷔지에, 렘 콜하스, 승효상, 조민석 등은 거의 전적으로 건축가로 불린다. 각종 문화행사에서도 등장하는 단어도 예외 없이 건축가다. 즉 화가, 음악가, 예술가 등의 용례와 마찬가지로 건축가는 건축설계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과 사회적 위상을 가진 이를 일컬을 때 쓰이고, 건축사는 실제 실력이나 활동과는 무관하게 면허증 소지자를 말한다. 물론 이 둘이 겹치는 영역은 상당히 넓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꼬였을까? 이 문제는 건축사법이 처음 제정된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계를 하지 않고 허가를 위한 서류를 대행하던 건축행정서사 등에 무시험으로 건축사 자격을 부여한 것이 화근이었다. 또 공무원에게는 실제 설계 능력 여부를 따지는 실기시험을 면제해 준 특례제도도 한동안 시행되었다. 이후 건축사 면허는 건축계에서 법적 지위에 걸맞는 문화적 지위를 거의 얻지 못했다. 면허와 설계 능력은 무관했다.

이 난맥상과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우선 2017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건축가연맹(UIA) 대회의 명칭부터 오락가락이다. 협회 정관에 UIA의 한국지부임을 밝히는 건축가협회와 학계와 언론계는 세계건축‘가’연맹으로 부르지만 건축사협회의 생각은 다르다. 각국의 건축사들이 모이는 만큼 ‘architect’를 ‘건축사’로 표기해달라는 공문을 서울시에 보내기도 했다.

명칭 문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설계/감리 분리 법안에 비하면 애교다. 국토부가 추진 중인 이 법안은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는 것이 골자다. 건축물의 허가를 담당하는 자가 원 설계자가 아닌 다른 건축사를 감리자로 지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감리 비용을 설계와 분리해서 확보하고 제3자에게 맡겨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는 건축이라는 직능에 정확히 반대되는 일이다. 건축 설계와 감리를 별개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발상이다.

그런데 건축사협회가 이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자신의 설계가 제대로 구현되는지를 감독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문화적 책임을 져야 하는 전문직으로의 직능에 반할 여지가 다분한 법안을 법적 지위를 갖춘 유일한 직능단체로 자부하는 단체가 찬성하고 나선 것이다. 창작보다는 인허가에 집중하는 건축사들에게 일감을 확보해주려는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소장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이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 건축가와 건축사 가릴 것 없이 스스로를 사회적 책임이 있는 전문지식인으로 여기는 이라면 이 법안이 폐기되도록 앞장서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이 문제는 한국 건축계가 치료하지 않고 계속 미뤄온 병이 도진 것이다. 근본적으로 직능의 정체성과 역할과 책임에 대한 합의를 빨리 이끌어내야 한다. 건축사법이 제정된지도 50년이 지났다. 20세기에 해결했어야 할 과제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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