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늘고 있지만 과거의 전쟁을 충분히 알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장래에 매우 중요합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82세 생일(23일)기념 기자회견에서 “여러 면에서 지난 전쟁을 생각하며 보낸 1년이었다”면서 전후 70년을 맞았던 올해 감상을 발표했다. 일왕은 특히 전쟁 당시의 민간인 희생에 대해 “평화시기였다면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인생을 보냈을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매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민간인 선원의 희생을 예로 들며 “장래에 외국항로의 선원이 되길 꿈꿨던 사람들이 군인과 군용물자 등을 실은 수송선 선원으로 일하다 적의 공격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민간인 선원의 희생을 언급할 때에는 감정이 북받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고 일본 언론이 23일 전했다.
일왕은 올해 여러 차례 전쟁에 대한 공부와 반성을 강조해 ‘전쟁 가능한 일본’을 향해 나아가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행보를 견제하려는 듯 보인다. 올 4월에도 남태평양 팔라우를 방문하는 등 전쟁의 참화를 기억하는 ‘위령(慰靈)여행’을 꾸준히 실천 중이다. 1월1일 신년소감에선 “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전쟁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8월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선 “앞선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특히 “과거 전쟁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장래에 중요하다”는 이번 생일회견 발언은 아베 총리가 8월14일 전후 70년 담화에서 과거사 책임에 대한 종결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당시 아베 총리는 “전쟁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왕은 건강이상설과 관련 언급도 해 주목을 끌었다. “나이를 실감하는 때가 잦아지고 행사 때 실수도 있었다”고 설명한 대목이다. 8월15일 전몰자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기 전 묵념순서를 빼먹은 전례와 10월25일 도야마(富山)현 행사때 메인이벤트를 지켜봤음에도 “진행됐느냐'고 묻었던 실수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돌발 상황들이 일부 매체에 보도되면서 의문이 제기됐었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신문은 도쿄도(都) 및 지방방문 빈도가 그의 아버지인 쇼와(昭和) 일왕이 같은 연령일 때와 비교해 2배인데다 외국 대사와의 면담 등은 5배라고 소개했다. 일왕은 일정에 대해 “당분간은 이대로 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궁내청은 공무부담 경감책을 모색 중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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