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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석과 조선희의 ‘타인과 친구가 되는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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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석과 조선희의 ‘타인과 친구가 되는 레시피’

입력
2015.12.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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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포토에세이 '카메라와 앞치마'를 함께 쓴 셰프 최현석(왼쪽)과 사진작가 조선희씨. 음식의 추억을 공유하며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푸드 포토에세이 '카메라와 앞치마'를 함께 쓴 셰프 최현석(왼쪽)과 사진작가 조선희씨. 음식의 추억을 공유하며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만만찮은 캐릭터끼리 만났으니 불꽃 좀 튀겼겠다. ‘센 언니’의 사전적 예시라 할 만한 사진작가 조선희(44)씨와 ‘허세 셰프’ 최현석(43)씨. 의외의 조합인 두 사람이 푸드 에세이 ‘카메라와 앞치마’(민음사 발행)를 최근 펴냈다. “거들먹거리는 것 같아 좀 재수없었다”(조선희)와 “무섭다더라”(최현석)가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었지만, 음식을 만들어 사진을 찍고 나눠 먹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일과 삶, 추억과 위로, 가난과 결핍이라는 아주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나눠버렸다. 타인도 친구로 바꿔주는 강력한 힘이 음식에는 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 두 사람을 18일 서울 논현동 조선희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불 같은 두 사람이 만나 별 일 없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조선희 작가가 더 세보이기는 하지만.

최현석(이하 최)= “제가 종사하는 직업이 서비스업이라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잘 안다.(웃음)”

조선희(이하 조)=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서비스업이다.”

최= (조선희를 바라보며) “서비스업을 격하게 하시지 않으십니까?”

조= “일단 내가 한 살 많으니까….”

최= “나이가 동갑이거나 저보다 한 살 어렸어도 상황은 똑같았을 거다.”

조선희 작가가 찍고 싶어했던 굴과 최현석 셰프가 불안을 다스릴 때 쓰는 힐링푸드 재료 장미. 민음사 제공
조선희 작가가 찍고 싶어했던 굴과 최현석 셰프가 불안을 다스릴 때 쓰는 힐링푸드 재료 장미. 민음사 제공

왁자한 농담으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조선희 작가의 오랜 친구인 출판편집자의 기획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올 여름부터 시작해 총 6회에 걸쳐 이뤄졌다. 살림집과 스튜디오가 위, 아래층으로 연결된 조 작가의 집에서 특정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최 셰프가 요리를 하면 조 작가가 사진으로 찍는 식이었다. 인물사진만 찍어온 조 작가는 고기의 질감이나 굴, 문어, 생선 같은 날것들을 찍고 싶어했고, 최 셰프는 창작요리의 고수답게 이 재료들로 뚝딱 요리를 만들어냈다. 그 다음은 함께 먹고 마시기. 사진촬영용 음식은 통상 먹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지만, 둘은 맛나게 먹었다. “식어도 맛있게 만드는 셰프가 진짜 셰프 아니겠습니까?” 최현석 셰프의 그치지 않는 농담.

최= “먹는 걸 앞에 놓고서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툭툭툭 나오더라. 정말 별의 별 얘기를 다했다.”

조= “안 친한 사이라서 더 편하고 재미있었다. 서로의 얘기를 들어줄 마음의 자세가 돼 있다면 누구하고도 적이 될 일은 없겠다, 이게 가장 큰 배움이었다.”

최= “서로 공통점이 너무 많았다. 특히 일하는 방식. 저도 주방에 들어가면 손을 떠는 후배들이 있을 정도로 무섭고 엄격하다. 전공이 아닌데 하고 있는 점도 닮았고.”

조= “저는 최 셰프가 해외 유학파인줄 알았다. 전공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두부김치를 가장한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 비주얼과 식감이 상충하는 페이크요리로 최현석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다. 민음사 제공
'두부김치를 가장한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 비주얼과 식감이 상충하는 페이크요리로 최현석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다. 민음사 제공

최현석 셰프가 고졸 토종 셰프라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잦은 방송출연은 그가 이미 업계에 이름을 떨친 실력파 셰프라는 사실을 자주 은폐한다. 올해 처음 실시된 ‘요리파 셰프’ 시상식인 블루리본어워드에서 그는 ‘올해의 셰프’ 후보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방송파 셰프’였다.

최= “요리파 셰프, 방송파 셰프, 이런 식의 구분이 우습다. 류현진 선수는 실력파 야구선수인가, 방송파 야구선수인가? 방송 나왔다고 깎아볼 필요는 없다. 요리사는 필드에서 얼마나 요리를 잘 하고 손님들에게 어떻게 평가를 잘 받느냐가 중요하고, 그게 본질이다. 20년 넘게 요리를 하면서 한국 요리사의 처우가 너무 안 좋고, 개선돼야 한다는 걸 늘 말하고 싶었다.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셰프라는 직업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다. 그래서 방송을 시작한 건데 너무 많이 하다 보니 확실히 메뉴 고민할 시간을 뺏기긴 하더라. 한때 다섯 개나 하던 방송을 이젠 ‘냉장고를 부탁해’ 빼고는 다 관뒀다. 요새는 주방에 틀어박혀 메뉴 고민만 하고 있다.”

-최현석 요리의 정체성을 창의성에 두고 있는 이유는.

최= “요리사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다. 아버지가 호텔 셰프였고, 어머니도 요리를 하셨다. 형도 요리사다.”

-요리계의 금수저?

최= “전혀 아니다. 넉넉하지 않았다. 다 종업원이라고 불렸지 않나. 기술직이라는 안 좋은 인식 때문에 저까지 요리를 하길 원치 않으셨는데,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었다. 재능이 있어서 한 게 아니라 스며들어갈 틈이 그것밖에 없었다. 제대 후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쿠치나’에 들어가 일했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일하다 10년 만에 독립하고 처음 내 요리를 했는데, SNS 평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맛있는데 라쿠치나랑 비슷하다’는 거다. 일단 스승께 누가 되는 일이었다. 그럼 난 뭘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난 무식하니까 이것저것 막 만들어보자.’ 새로운 것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강박관념을 갖게 됐다. 요리는 다양성이 중요하고, 제가 맡은 파트는 창의적 요리다. 그게 제 역할이다.”

조= “저도 김중만 선생님의 어시스턴트였다. 독립 후 친한 언니한테 ‘선희야, 네 사진을 보면 김중만이 보인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나다운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배우들에게 캐릭터를 입혀서 사진을 찍었던 것도 그런 고민에서 나온 거였다.”

디저트 재료인 초콜릿을 과감하게 애피타이저에 사용한 최현석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 '초콜릿을 올린 푸아그라 요리'. 민음사 제공
디저트 재료인 초콜릿을 과감하게 애피타이저에 사용한 최현석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 '초콜릿을 올린 푸아그라 요리'. 민음사 제공

-‘스펙시대’다. 초등학교 6학년만 돼도 진로 고민을 한다. 스펙 없이 필드에서 배우면서 업계 최고가 된 사람들로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을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조= “사실 중간에 유학을 갈까 고민한 적이 있긴 하다. 테크니컬한 면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스펙이 중요하다고는 생각 안 한다. 내가 어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우리처럼 창의적인 일, 자기를 표현하는 일은 자아가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배우도 연기학원 다닌 사람 중에 연기 잘하는 배우 없다. 중졸도 많다. 어릴 때부터 고난을 이겨온 사람들, 진한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 연기를 잘한다.”

최= “교육자들이 가르칠 때 기본만 가르치고 디테일은 남겨둬야 한다. 어느 선 이상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해나갈 영역을 남겨둬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친다.”

조= “사진도 트렌드가 바뀌니까 라이팅을 잘 몰라서 답답했던 때가 있다. 그런데 스스로 익히며 20년을 보내고 나니까 학생들이 공식 외우듯 배우는 ‘렘브란트 그림자 만들기’ 같은 조명기법이 너무 전형적이더라. 날씨에 따라 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자기만의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만의 라이팅’을 창조해서 ‘자기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데, 렘브란트 그림자에 콘트라스트는 얼마를 주고 다 그러고 있다. 이런 건 다 엉터리다.”

최= “요리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가르쳐 보면 기본기 하나 없지만 생각이 파릇파릇한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수비드(저온조리법)는 이래야 한다며 공식대로만 하는 학생들도 있다. 돼지고기는 가수분해 온도보다 몇 도 더 높게 요리해야 냄새를 잡을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는 거다. 자격증 기준에 맞게 칼질을 하려고 눈금이 그려진 칼을 쓰는 학생들도 있다.

꿈을 이루는 방법은 다양하다. 무슨 세계적인 요리학교를 가서, 어느 유명 요리사 밑에서 배우고…, 그런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기자들이 그런 셰프들에게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그런 셰프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그런 길을 가지 않고도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들이 정말 많다. 저한테도 ‘고졸 출신이라 더 위대하다’ 이런 말 많이 하는데, 사실 요리에 대한 견문과 지식이 아쉬울 때도 있었다. 요리학교에 갔다면 더 폭넓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무식했기 때문에 남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식재료들의 조합을 생각할 수 있었다. 초콜릿을 애피타이저에 쓰는 건 요리학교 출신이라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일이지만, 푸아그라는 단 소스와 어울리니까 초콜릿을 한번 써보는 거다. 지금은 제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목표를 이루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이 길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사회분위기가 있다. 이제 고1인 학생이 ‘요리사가 되고 싶은데 자격증이 없어 고민’이라는 이메일을 보내온다. 나는 10년을 하고 30대가 돼서야 요리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러니 똑똑한 아이들이 어깨가 축 처져서 사는 거다.”

조선희 작가의 미각에 충격과 쾌락을 안겨준 최현석 셰프의 창작요리 '다섯 가지 알을 올린 파스타'. 민음사 제공
조선희 작가의 미각에 충격과 쾌락을 안겨준 최현석 셰프의 창작요리 '다섯 가지 알을 올린 파스타'. 민음사 제공

두 사람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모두 면요리를 꼽았다. 경북 왜관의 촌소녀였던 조선희 작가에게 간짜장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때는 몰랐던 깊은 부정’이며, 최현석 셰프에게 국수는 가난에 물려 싫었던 밀가루 음식에서 나이 들며 닮아가게 된 그리운 아버지의 음식이다.

-가난과 결핍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더라. 가난이 본인의 작업에 끼친 영향은?

조= “에너지원이다. 이제 열 살인 우리 아들 돌잔치를 끝내고 들어온 선물들을 보는데 너무 부럽더라. 나는 못 가져본 것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사람이 다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핍이 있어야 에너지가 생긴다. 우리 아들을 다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 키우려고 노력한다. 물론 우리 아들은 기본적으로 엄마와의 풍요로운 시간이 없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풍요롭지 못했고, 다섯 남매의 셋째였고…, 그런 것들이 내가 독립적으로 크고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줬다.”

최= “후배들한테 늘 하는 말이 ‘도망만 가지 말아라’다. 의사, 판사는 어려운 공부를 하고 시험에 붙어야 할 수 있지만, 요리사는 도망만 안 가면 어디선가 할 수 있다. 가난은 내게 그런 것이다. 없이 사니까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가난하니까 계속해야 했다. ‘어떤 역경을 이겨내셨습니까’ 많이 물어보는데, 습진 때문에 손가락 지문이 없어지고, 찢어지고, 냉장고나 믹서 같은 전자제품을 만지면 전기가 올라도 멈추지 않았다. ‘여기를 벗어나면 굶는다!’ 한 레스토랑에서 10년 넘게 버틴 힘이 그거였다. 우리 딸들도 그렇게 키우려고 하는데, 너무 바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으니 자꾸 해달라는 대로 해주게 돼서 고민이다.”

-각자 삼시세끼는 어떻게 먹나?

조= “아침은 된장찌개, 김치찌개 같은 집밥을 먹고, 점심은 촬영하면서 김밥, 피자, 떡볶이 같은 걸 먹는다. 약속 있을 땐 늘 스파게티고. 저녁은 술과 함께 안주를.”(웃음)

최= “잘 먹어야 두 끼다. 아침엔 바나나, 출근해서 점심 겸 저녁으로 4시쯤 한 끼 먹는다.”

조= “저녁은 안 먹는다고?”

최= “그래서 집에 가면 야밤에 꼭 치킨을 시켜먹는다. 교촌치킨이 그렇게 ‘사탄의 역사’가 됐다니까.”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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