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쪼그라드는 군소 업체

상위 100곳이 기부금 절반 차지
10억 미만 법인 6934곳은 허덕
100만원대 인건비로 서비스 부실
홍보 투자 여력 없어 악전고투
자극적인 사진 연출, 구태 반복
'작은 거인' 위해선 투자 도와야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대문쪽방촌상담센터에서 주민들이 대한적십자사와 LG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형 기부단체로의 기부금 편중 현상이 심각해 외국에 비해 군소 기부단체들이 지역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부천시 중동에 자리잡은 부천희망재단은 연간 기부금액이 5억원 미만인 군소 기부단체다. 22일 오후 찾아간 재단 사무실은 10㎡(3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었고, 연말이라 직원 3명 모두 기부영수증 발행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중 한 명인 차운호(29)씨 모니터 위에도 기부영수증 작업 화면과 다음주 모금 캠페인에 사용될 팸플릿 작업 화면이 동시에 띄워져 있었다. 차씨는 “각종 홍보물 디자인은 물론 전화응대, 재무처리까지 해야 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다른 직원도 모금 등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서로 돕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슈퍼맨’이 되야 하는 영세단체

공시의무를 가진 공익법인 중 기부금 10억원 미만인 소규모 공익법인은 전국적으로 6,934곳에 달하지만 군소 기부단체의 현실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이중 상위 100개 단체가 전체 7,484개 공익법인 총 기부금의 절반(2조5,925억원)을 차지할 만큼 대형단체로의 편중이 심각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기부단체들은 담당 부서를 세분화하고 홍보담당만 10명가량 두며 인력풀을 가동하고 있다. 반면 군소 단체들은 사회복지 사업에서 활동가가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도 월 100만원대 인건비가 아까워 인력 확충에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직원 층이 얇은 영세 기부단체들은 스스로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회계, 마케팅, 모금 등을 한 명이 수행하다 보니 업무가 과중한 것은 물론이고, 전문성을 키워나가기도 쉽지 않다.

또 영세 단체들은 전문모금가를 육성하거나 영입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회복지 쪽에서는 통상 1명의 전문모금가가 연간 10억원을 유치할 수 있다고 본다. 전문지식과 논리, 상담전략 등을 갖춰 고액기부자들과 1대1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기부컨설팅 업체 도움과 나눔 최영우 대표는 “당장 할 일이 많은 영세 단체 직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속적으로 고액 기부자들을 설득해 모금하기란 쉽지 않다”며 “결국 영세 단체들이 쉽지만 모금액은 적은 대중모금 방식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은 국제공인모금전문가(CFREㆍCertified Fund Raising Executive) 자격증 취득자를 비롯, 비공식 전문모금가까지 10만명가량이 활동하고 있지만 국내는 CFRE 보유자는 단 3명이고 전문모금가 역시 100명 내외로 파악되고 있다.

인력과 전문성 부족은 자연스럽게 서비스 부실로 이어진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가 지난 4월 연간 기부금 10억원 미만 법인부터 5,000억원 이상 법인까지 규모별로 10개 공익법인을 선정해 각각 10만원씩 기부한 뒤 6개월간 기부자 응대 서비스를 평가한 ‘암행기부’ 실험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확인된다. 5,000억원 이상 법인은 ▦상품소개 ▦서류발급 ▦불만접수 ▦기부제안 등 4가지 항목에서 17점(20점 만점)을 받았으나 10억원 미만의 법인은 6점에 불과했다. 비케이 안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은 “인력 사정이 좋지 않은 영세 단체들은 서비스 응대 매뉴얼을 개발할 여력이 없고 서류처리 작업 등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금 효과 좋은 광고는 그림의 떡

군소 기부단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대형 단체들에 비해 단체 활동을 홍보하고 모금을 호소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대중매체 광고에 2억을 투자하면 20억원을 모금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광고 한 편의 위력은 크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영세 단체에겐 그림의 떡이다.

일부 기업과 연예인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기부단체 광고를 후원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대개는 홍보 효과가 높은 유명 기부단체에 집중된다. 한 영세 구호단체 대표는 “출연료는 받지 않더라도 기부단체가 직접 외주업체에 수천만원을 주고 영상을 제작한 뒤 방송을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영세단체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설사 비용을 대 광고를 만든다 해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작은 단체를 방송에 내보내 줄 매체는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기부금 모금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영세 단체들은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방식으로라도 모금을 하자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빈곤포르노는 갈비뼈가 앙상한 기아 아동 등 자극적인 이미지나 ‘엄마가 되어줄게’같은 감정적 문구로 사람들에게 모금을 호소하는 방식이다. 구호사업의 본질을 보여주기보다 사진 연출을 위해 인권을 침해하는 등의 문제가 커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전략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국내 기부 문화에서는 여전히 단골로 등장한다. 한 공익법인 관계자는“문화,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도 굶어 죽기 직전의 아프리카 아동 사진처럼 동정심을 유발할 수 없으면 모금이 잘 안 된다”라며 “아예 우리도 해외구호 단체로 전향하자는 농담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은 거인 키우려면 기부자도 어느 정도 내부투자 용인해야

군소 단체들은 해당 지역에서 풀뿌리 역할을 톡톡히 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부천희망재단의 경우, 생계가 어려워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을 위해 지역의 비영리기구와 연계된 유급 인턴십을 제공한다. 또 범죄 피해자에게 생활비를 지급하고 불우 아동들의 난방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연간 기부금 모금액수가 17억원 수준인 함께걷는아이들도 문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아동들에 오케스트라 활동을 지원한다. 두 단체는 투명성 지표에서 각각 70.6점과 76.5점으로 정보제공에도 적극적이다. 부천희망재단 관계자는 “지역에서 인지도를 넓혀가고 월별 운영보고를 통해 10만원 단위 지출 내역도 상세하게 밝히는 등 투명하게 운영하지만 대형 단체만큼 홍보가 크게 되지 않아 사업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세 단체들을 ‘작은 거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 기부자들도 기부단체가 인력과 시설 등 기부 규모를 키우는 데 필요한 투자는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주성수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장은 “국내에도 미국 포드, 록펠러 재단처럼 기업들이 기업 가치와 부합하는 영세 단체들을 발굴하고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며 “국내 기부자들도 거주하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세 단체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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