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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2016년이 기대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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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2016년이 기대되는 이유

입력
2015.12.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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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일이다. 파란 넥타이를 맨 남자가 노란 정장을 입은 여자에게 물었다. “세계 각국 대표들이 1977년 교토의정서를 협의했습니다. 한국은 10대 이산화탄소 배출국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총량을 낮춰갈 수 있을까요?” 물론 이렇게 완벽한 문장으로 물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문장이었다. 문제는 자그마치 30년 전의 일을 물었다는 것.

항상 과거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기보다는 미래를 중요시 여기고 새로운 역사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던 여인은 당황했다. “굉장히 준비를 잘 해서… 배기가스라든가 이런 것이 조정이 될 수 있도록, 어떤 법적인 조치를 하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커다란 부담을 갖지 않도록 정부가 유도를 하고 지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를 배출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산화가스는 아마도 이산화탄소를 말한 것 같다. 누구나 당황하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법이다. 다만 산소가스를 누가 배출한다는 말이며 또 그게 왜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황당한 질문을 받은 여인의 말이 꼬인 것일 게다. 이런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쯤 되면 토론 주제를 바꿔서 다른 대화를 나누는 게 상식이고 예의다. 올해 10월 13일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은 파란 넥타이를 맨 백발의 남자와 검은 정장을 입은 금발의 여자. 사회자가 금발 여인이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공무와 관련하여 정부 이메일 서버를 사용하지 않고 개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한 것을 언급했다. 백발 남자에게는 공격의 찬스였다. 하지만 그는 여자를 공격하는 대신 “이제 이메일 이야기는 그만하자. 지금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평등이지 이메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쏟아냈다. 이런 일은 2015년에야 일어났다.

지난 1일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참석차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 특별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일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참석차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 특별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07년에는 달랐다. 상대방이 당황한 것을 눈치 챈 남자는 그걸 물고 늘어진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기업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견해를 말해 달라.”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인데 어떻게 대책을, 그것도 근본적인 대책을 밝히라는 말인가. 노란 옷의 여자는 다시 더듬으면서 대답했다. “기업 쪽에서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기업과 정부가)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같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란 옷의 여자가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모습에 파란 넥타이의 사내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알겠습니다. 그 정도로 하겠습니다”라며 공세를 마쳤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토론장에는 별로 주목 받지 못하던 빨간 넥타이를 맨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그 남자는 “환경 대책은 지속가능발전법안이 지난 6월에 이미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입법은 완비가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대체에너지 문제입니다”라고 이미 받은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혀를 찼고 즉시 인터넷에는 온갖 조롱이 난무했지만 역시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는 해피 엔딩이었다. 파란 넥타이의 남자는 그 해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고 빨간 넥타이의 남자 역시 2012년 경남 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노란 옷을 입은 여자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2007년의 토론은 우리나라 막강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귀한 장면이었던 셈이다.

그 사이에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전 지구적 환경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는 올해 상반기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이대로 가면 2100년 지구 온도는 최소 3.7~4.8도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1977년에 합의한 도쿄의정서의 수명은 2020년에 끝난다. 따라서 올해 안에 ‘신기후체제’를 합의하고 2020년까지는 각국이 비준을 마쳐야 한다.

시간이 흘러 2015년 9월이 되었다.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정상회의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기후정상회의를 앞둔 주말인 9월 20일과 21일에는 전 세계 2,000여 곳에서 7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각국의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방식은 달랐다. 불과 8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서울시청에서 탑골공원까지 1.3㎞를 행진했을 뿐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통령의 입에 주목했다.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단순한 시위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창조경제와는 걸맞지 않는다. 우리 대통령은 기후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를 새로운 기회이자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2100년에는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내로 억제하려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를 아시아 최초 전국 단위 배출권거래제로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불과 8년 전에 당황하던 모습에 비하면 얼마나 당당한 모습인지 모른다. 그런데 여전히 디테일에서는 서툴렀다. 대통령은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배출량 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2011년에 2020년 감축목표량의 29%를 초과한 상태이며 우리는 불과 8년 사이에 탄소배출국 순위가 7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산화탄소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2007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2100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도 안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말대로 “지금 당장 모두가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그저 계속 ‘잘’할 수만은 없다.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이 추세대로 가면 내년에는 정확한 근거와 대책이 제시될 것 같다. 2016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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