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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결산] 불신 바이러스, 일상에 침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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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결산] 불신 바이러스, 일상에 침투하다

입력
2015.12.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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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을미년도 저물어 가고 있다. 2015년 화제가 된 5개의 단어(메르스, 혐오, 수저, 혼, 연대)를 선정, 올 한 해 대한민국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5회에 걸쳐 되돌아 본다. -편집자주-

2015년 인터넷포털사이트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는 단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다. 네이버, 다음, 구글, 카카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은 올해의 단어로 모두 메르스를 꼽았다. 메르스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는 어떤 모습일까.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난 6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대병원 메르스 치료 격리병동을 방문해 의료진과 통화하는 모습. 6월 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브리핑에 나선 모습. 6월10일 최경환 당시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메르스 관련 '대국민당부의 말씀'을 발표한 직후의 모습. 6월17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찾았던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뉴시스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난 6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대병원 메르스 치료 격리병동을 방문해 의료진과 통화하는 모습. 6월 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브리핑에 나선 모습. 6월10일 최경환 당시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메르스 관련 '대국민당부의 말씀'을 발표한 직후의 모습. 6월17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찾았던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뉴시스

● 메르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한국은 메르스 발병 세계 2위 국가다. 지난 5월20일 국내에서 첫 환자(남·68)가 발생한 이후 총 186명이 메르스에 감염됐다. 이 가운데 38명은 목숨을 잃어 치사율이 무려 20.4%에 달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평균 잠복기는 6.83일, 첫 환자가 확인된 5월 20일부터 마지막 80번 환자가 사망한 11월25일까지 6개월간 창궐했다.

정부의 허술한 대처 속에서 방역망은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감염이 의심돼 격리를 경험한 사람은 총 1만6,752명, 최대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로부터 감염된 사람은 85명에 이른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경유한 의료기관은 106곳으로 피해 의료기관에는 올해 안에 1,781억원의 손실보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22일 현재 치료중인 환자는 2명으로, 정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종식을 선언하지 않았다.

지난 6월 23일, 서울 마포구 보라매병원 메르스 전용 병동에서 출입금지된 문 사이로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6월 23일, 서울 마포구 보라매병원 메르스 전용 병동에서 출입금지된 문 사이로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 허둥지둥 정부… 마스크 못 벗는 시민들

메르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한 종류로, 낙타가 감염 매개원이다. 낙타로 감염되는 메르스가 한국에서 유행할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없었겠지만, 지난달 80번 환자가 숨질 때까지도 정부의 대처는 너무나 서툴렀다. (▶기사보기)

정부는 첫 확진 이후부터 온갖 조직과 설익은 대책을 우후죽순 식으로 쏟아내기에 급급했다. 정부가 최초 감염자 검사와 격리 요청 거부하고 확진자 및 격리대상자에 대한 정보 공유를 꺼리는 사이, 국내 제1의 종합병원으로 꼽히는 삼성병원은 메르스 확산 진원지가 됐다. 1번 환자를 찾아내고도 방역에 무방비였고, 슈퍼전파자 14번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메르스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실책을 저질렀다.

정부 대처에 대한 불신과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져갈수록 각종 괴담이 퍼져 나갔다. 서울 강남의 한 여성이 메르스 의심환자로 자가 격리를 통보 받았다는 소식에 강남 일대 학교와 학원은 휴교나 휴원했고, 중심가 한복판에 방진복을 입은 구급대원이 출동해 격리자를 찾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정부의 '깜깜이' 정보 통제는 시민들을 비이성적 공포로 몰았고, 사람들은 좀처럼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기사보기)

● 메르스 사태에 비친 '세월호 그림자'

메르스 사태는 국내 감염병 대응체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6인실 위주의 병실구조, 경증과 중증 환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응급실 시스템, 감염에 취약한 병문안 문화 등의 위험성을 체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능한 정부의 정보 독점과 부재하는 컨트롤타워, 안전?생명을 경시하는 경제제일주의, 원자화된 시민사회와 일상화된 공포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마주한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했다. (▶칼럼보기)

국가권력의 무능과 사회 전반에 걸친 안전불감이 사태를 키웠다는 점에서 메르스 사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닮아 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질병이었음에도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사태를 확산시켰다는 점은 세월호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메르스 사태에서 보았듯이, 여전히 각 부처간의 유기적 협조를 통한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칼럼보기)

메르스가 한창이던 지난 6월9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대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메르스가 한창이던 지난 6월9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대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메르스가 남긴 '불신 바이러스'

메르스 사태 이후 ‘불신 바이러스’가 기승이다. 신종 바이러스에 처참히 무너져 버린 국내 의료 현실에 대한 불안,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 정부나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한 불신으로 일상의 안전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사보기)

불안을 부채질 하는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10월에는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학에서는 원인 모를 폐렴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해 간담을 서늘케 했고, 11월에는 서울 양천구의 한 의원에서 수년간 1회용 주사기를 반복 사용해 C형간염에 집단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불신의 치유법은 신뢰의 회복이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 이후 이름만 달리할 수많은 '안전사고'에 대한 대처법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지적이다. 전국민이 극단적인 공포에 시달리고, 국정이 마비되고, 경제가 뒤흔들렸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책임 있는 사태 수습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지만 메르스 사태를 마무리하는 과정은 여전히 실망스럽다는 얘기다. 마지막 감염자였던 80번 환자의 유족들은 “치료과정에서 보건당국이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며 울부짖었다. (▶기사보기)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지원한 사실도 알려지며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기사보기)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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