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이 무너졌고 백낙청이 물러났다. 21세기에 때아닌 금서 논란이 일었고 도서정가제는 책값 인하에 기여한 반면 또 다른 과제를 남겼다. 어느 해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5년 출판ㆍ문학계 이슈를 정리했다.
“지배적 문학장의 내파” 신경숙과 백낙청
6월 16일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씨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란 글을 통해 소설가 신경숙씨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폭로했다. 의혹의 불씨는 작가의 미흡한 사과, 출판사의 감싸기로 인해 주류 문단의 문제로 옮겨 붙었다. 각 출판사의 평론가들이 돈벌이가 될 만한 작가를 위해 상찬 일색의 비평을 써주고 상당수의 작가가 문제제기 없이 시스템에 복속을 자처한 결과,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 공고해졌다는 비판이다. 주류 출판사에서 등단하고 비평의 대상이 되고 책을 출간한 사람만이 작가로 인정 받는 분위기에서 더 이상 새로운 문학이 생산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문학장의 전면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문학판의 균열은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 등 3대 출판사의 대표 및 편집위원이 줄줄이 물러나는 것으로 가시화됐다.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를 비롯한 1기 편집위원 전원이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를 끝으로 창간 20년 만에 자리를 내놨고, 창비의 백낙청 편집인이 50년 독주 체제를 끝낸 데 이어, 문학과지성사가 5세대 동인으로 세대교체를 감행했다.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는 영화ㆍ대중가요 비평가 등 문학 외부 인사들을 영입, 변화의 물꼬를 텄다.
이는 기존 문예지 폐간과 신생 문예지 출현과도 맞물려, 40년 된 ‘세계의 문학’과 ‘솟대문학’, ‘유심’ 등이 발간을 중단했고, 서평지 ‘악스트’, 장르문학전문지 ‘미스테리아’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시장에 진입했다.
때아닌 금서논란 “현대판 분서갱유”
5월 한 극우단체가 학교도서관에 좌편향 책들이 있다며 폐기하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학교도서관 추천도서 선정의 투명성을 높여달라고 교육청에 공문을 보낸 데 이어 경기도교육청이 학교에 해당 도서의 폐기 여부를 검토하고 이미 책을 읽은 학생들을 사후 지도하라는 공문을 보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도서관의 자유를 옹호하는 유관단체들은 현대판 분서갱유라며 비판했고, 독서의 달인 9월 첫 주를 금서 읽기 주간으로 선포해 맞섰다. 앞서 문체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세종 문학나눔도서 사업에서 “이념 편향”이 있는 책은 배제한다는 지침이 있었던 터라 반발이 더 컸다. 문제가 된 경기도교육청의 공문과 세종 문학나눔도서 지침은 결국 철회됐지만, 현 정권 들어 갈수록 노골화하는 우경화와 매카시즘이 출판동네까지 뻗치고 있다는 불쾌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책값 6% 인하
개정 도서정가제는 신간과 구간 구분 없이 모든 책의 할인율을 정가의 15%(할인 10% + 사은품 등 5%)로 제한함으로써 무차별 할인 경쟁에 치어 설 자리가 없던 작은 출판사와 작은 서점들에 비빌 언덕을 제공했다. 할인율 제한을 책값 상승으로 여겨 거부감을 보이던 독자들의 우려와 달리 시행 1년을 지내고 보니 신간의 평균 정가는 6% 정도 낮아졌고(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은 제값 주고 사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차츰 자리잡아가고 있다.
허점이 없지는 않다. 카드사 제휴 할인을 허용하는 한 정가제 파괴의 유혹은 계속될 수 있으니 할인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할인율 제한에 따른 마진 확대분을 서점이 차지하고 출판사에는 도움이 안 되니 도서공급률(출판사가 서점에 넘기는 책값의 정가 대비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보완이 필요하긴 하지만, 제도 자체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앙팡테리블의 출현” 장강명과 후장사실주의
한국 소설의 침체가 어느 해보다 극심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멈췄던 작가들의 펜은 표절 사태를 기해 숫제 얼어 붙었다. ‘한국이 싫어서’로 주목 받은 소설가 장강명씨는 한국 소설의 침체 원인으로 “현실과 접점이 있는 서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한편에선 반기를 들었다.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후장 사실주의’라는 단체를 결성, 선배 작가들을 실명으로 희곡에 등장시키는 등 기성 문단에 대한 패러디와 조롱을 서슴지 않은 한편 서사 문학과도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누가 한국 소설의 다음 이정표를 제시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문학판에서 한동안 실종됐던 앙팡테리블의 출현은 작은 사건으로 기록될 만했다.
스마트폰 시대 웹 소설의 성장
한국 문학의 사망이 거론되는 한 켠에선 연봉 2억짜리 ‘작가’들이 속출했다. 웹소설 시장은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포털이 뛰어들면서 지난해 200억원에서 올해 400억원으로 규모가 급팽창했다. 뻔한 소재와 선정적인 내용 등 질 낮은 문학이 판친다는 우려와, 오락으로서의 서사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순문학 작가들의 웹소설 연재가 잇달아 실패로 끝나기는 했으나 최근 김탁환 소설가와 이원태 기획자가 쓴 ‘조선마술사’가 웹 연재 당시 두 달 간 7만뷰를 기록하며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비쳤다.
해외에서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의 책 ‘위대한 탈출’ 은 출판사가 저자의 의도를 왜곡 번역한 ‘지적 사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책은 원서를 낸 프린스턴대 출판부와 저자가 전량 회수를 요구함에 따라 판매가 중단되고 수정해 재출간됐다. 원서가 불평등의 양면성을 논증한 것과 달리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고 일방적인 해석으로 몰아부친 것이 문제가 됐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논픽션과 문학의 경계에서 독특한 글쓰기를 해온 벨라루스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돌아갔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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