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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닥터 둠’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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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닥터 둠’ 전성시대

입력
2015.1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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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경제 비상시국이다.”(여당 대변인)

“야당은 경제에 울리는 위기 경보음에 응답하라.”(여당 대표)

“구조조정을 안 하면 전체적으로 큰 위기에 빠지고 그것은 대량실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대통령)

갑자기 요즘 청와대와 여권에 ‘닥터 둠’(미래 경제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늘었다. 자신들이 3년간 책임지고 경영해 온 나라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셀프 경고’하는 모습은 어색하다. 누가 더 독한 비관론자인지 경쟁이라도 하는 듯, 그 표현이 세다.

과연 상황이 그 정도일까? 여권 비관론자를 빼면, 나라 안팎에 한국 경제를 이처럼 ‘메가톤급 대악재가 산적한 비상시국’으로까지 보는 시각은 별로 없다. 잇단 위기 발언이 나온 지 며칠 뒤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무디스는 “한국 경제가 5년간 선진국보다 높은 성장세를 지속할 것”이라며 “1인당 소득도 유럽 선진국에 근접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디스가 매긴 등급은 중국 일본보다 높고, 프랑스와 같다.

나라 경제 컨트롤타워 격인 기획재정부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디스 등급 상향과 관련 “대외 신인도가 다른 국가와 확실히 차별화된다는 것을 인정받았다”고 했으며,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린 직후에는 “대외건전성, 재정건전성 등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양호하다”고 자평했다.

물론 신용평가사와 기재부의 평가는 체감경기를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한다. 또한 저성장시대에 접어든 한국은 정도의 문제일 뿐 상시적 위기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나라 안팎 전문가와 연구기관 전망을 종합할 때, 한국 경제는 미국을 뺀 선진국이나 다른 신흥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 중이라고 정리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당청 수뇌부가 굳이 위기설을 들고 나온 이유는 4대 부문 개혁이나 경제 관련 법안 통과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총선을 앞두고 각종 개혁조치가 무산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야당 책임으로 몰아가려고 한 자락 깔아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위기 발언이 정부와 여당에서 계속 나오는 것은 미국이 금리를 계속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로 좋지 않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기재부는 미국 금리 인상에 대비해 “신용평가 기관 및 해외 투자자와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한 “국내 채권시장의 큰 손인 외국 중앙은행 및 국부펀드와 계속 협의해 가겠다”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한국 경제 튼튼하니 돈 빼가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외국에 설득하고 다니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행정부 수반이나 집권당 관계자가 자꾸 위기가 올 거라 말하면, “한국 경제 안심해도 된다”는 한국 공무원의 장담은 뭐가 될까?

최근 발언이 강조점만을 부각한 ‘수사적 표현’일 수도 있다. 절박한 심정이라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때론 비관론이 최악의 위기를 대비할 동력을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이들의 수사는, 특히 그것이 경제 위기와 관련한 것이라면, 정말 신중한 과정을 거쳐 나와야 한다. 만약 지구 반대편 어떤 나라에서 대통령이나 총리, 또는 집권당 유력 정치인이 “우리 경제는 심각한 위기”라 발언했고, 그 내용이 외신을 타고 국내에 보도된다고 치자. 그러면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그 나라 사정이 어렵겠거니’ 생각하기 마련이다. 굳이 그 말이 나오게 된 내부 정치 상황을 되짚어 볼 사람은 거의 없다. 나라의 지도자가 위기를 말하면 바깥에서 ‘위기를 겪는 나라’로 낙인 찍혀도 할 말이 없다. 나라 안을 보더라도, 국민이 위기 발언 탓에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 하는 것은 경제 심리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영창 경제부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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