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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종 경기 사상 첫‘마의 9,000점’돌파한 애쉬튼 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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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종 경기 사상 첫‘마의 9,000점’돌파한 애쉬튼 이튼

입력
2015.12.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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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튼 이튼이 지난 8월 베이징 육상세계선수권 10종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환호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애쉬튼 이튼이 지난 8월 베이징 육상세계선수권 10종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환호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10종 경기 세계챔피언 애쉬튼 이튼(27ㆍ미국)이 지난달 27일 우사인 볼트(29ㆍ자메이카)를 제치고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선정한 2015 올해의 남자 선수로 뽑혔다. IAAF는 지난 8월 열린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종 경기에서 9,045점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이튼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이튼은 10종 경기 선수로는 최초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이튼은 어떤 생각과 멘탈로 경기에 임했을까? IAAF는 지난 7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튼의 목소리로 우승 선수의 심리상태를 들여다 본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첫 번째 경기: 100m 달리기

출처=IAAF홈피
출처=IAAF홈피

경기가 시작되니 경기 전의 긴장감이 안정과 행복으로 바뀌었다. 외부에서의 압력은 이미 출발총성과 함께 끝났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승리할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승리를 예감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이다. 더 이상 나는 메달에 집착하지 않았고, 단지 경쟁의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하고 집중했다.

100m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는 긴장되지만, 그것은 10종 경기에서 느끼는 긴장감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여자 육상 7종 경기 100m예선 경기를 본적이 있다. 나는 당시 한 선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그는 100m 결승선을 꼴찌로 통과했지만, 결국 7종 경기에서 우승했다. 어떻게 그는 첫 번째 경기인 100m에서 그렇게 안정된 모습을 보였을까? 그는 조바심이나 욕심을 내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 그와 같은 선수가 돼야 한다. 나는 달리는 내내 내 자신에게 “안정적으로, 그러나 최선을 다해 달릴 것”을 주문했다.

두 번째 경기: 멀리뛰기

멀리뛰기 구름판에 가까워질수록 100m의 흥분은 금방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8m 이상을 날아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휩싸였다. 그 순간 나는 10종 경기에서 멀리뛰기가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인지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10종 경기에서 두 차례나 세계챔피언에 오른 트레이 하디(31ㆍ미국)의 부상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2008년부터 트레이를 지켜봤지만 그는 선수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고, 나는 누가 그를 이길 것인지 항상 궁금했다.

부상당한 그를 보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그가 경기를 끝낼 수 없음을 알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는 2013년에도 경기를 끝내지 못했다. 그가 여기까지 오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동정에 빠져 내 정신을 놓아버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뇌며, 내 몸에 조금 더 집중했다. 지금까지 많은 10종 경기 선수들이 좌절한 모습을 봐왔고, 트레이는 구름판에 그 좌절과 슬픔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세 번째 경기: 포환던지기

나는 다음 경기인 포환던지기를 위해 침착하게 준비하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유독 심장이 빨리 뛴 이유는 평소 결과가 좋지 못한 종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훈련 기간의 인내와 노력이 그 이상으로 발휘돼야 했다. 훈련 때보다 멀리 던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컸지만, 3번의 기회가 1년 훈련을 평가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번 대회 전체를 망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네 번째 경기: 높이뛰기

이번 경기에는 작은 일화가 있다. 가을 동안 나는 높이뛰기 종목에 피나는 노력과 시간을 바쳤다. 믿기 힘들겠지만, 가벼운 몸으로 도약하기 위해 매일 아침을 2.06mg씩 먹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코치의 말과 지시를 따르기로 한 결과였다. 그러나 가장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세계선수권 무대에 서자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습과 실전은 확실히 다른 것이다. 나는 훈련할 때와 실전의 혼동 속에서 심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뛰는 순간 2년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서 1.93m를 뛰어 8,800점을 기록했을 때 이상의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점수를 뛰어넘었다.

다섯 번째 경기: 400m 달리기

400m. 아마도 여러분이 가장 궁금해할 종목 일 것이다. ‘어떻게 달리며’,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와 같은 질문이다. 400m 경기는 그 이상을 뛸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춘 채 출전해야 한다. 올해 나의 첫 400m 레이스는 5월9일 오리건주 헤이워드 경기장에서 열렸다. 올림픽 400m 은메달리스트인 브라이숀 넬룸이 옆 레인 6번에서 뛰었다. 그와 비슷해지려면, 내가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다. ‘무슨 수로 저렇게 뛰는 거야!!’라고 외치며 그를 따라 달렸다. 막상막하였다. 그는 나보다 0.01초 앞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경기 운용 방식을 알고 싶었다. 브라이숀은 “400m의 진정한 승부는 200m지점부터”라며, “이 지점을 지난 후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브라이숀에게 배운 방식으로 2주 후 애틀랜타에서 열린 400m 경기에 출전했다. 차이는 미미했지만, 기록은 향상됐다.

베이징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한국에 훈련 캠프를 차린 캐나나 대표팀과 합동훈련에서는 더 큰 배움을 얻었다. 나는 이곳에서 퀸시 왓츠(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400m 금메달리스트)를 만났다. 왓츠와 내 코치 해리가 룸메이트였고, 우리는 매일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그는 더 간단하고 쉬운 팁을 전수해주었다. 한 바퀴가 되기 전 4,5걸음을 보다 빨리 달린다고 생각하고 달리는 것이었다. 그는 초반의 작은 노력이 후반에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에 오기 전까지 해리는 나에게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연습과 새롭게 배운 사실 모두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해리는 투미(1968년 멕시코올림픽 10종 경기 챔피언, 투미는 400m에서 45.68의 최고기록을 세웠다)의 기록을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라 했지만, 나는 매우 지쳐있었고 46초벽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베이징에서 퀸시 왓츠처럼 출발한 뒤 200m지점부터는 브라이숀처럼, 그리고 마지막 결승선 100m를 앞두고는 라숀 메릿(미국ㆍ그의 흔들리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처럼 달려 결승선을 통과했다. 나는 솔직하게 이 세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달렸다. 그리고 45초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제껏 46초라는 벽 안에 나를 가둬두고 그 이상을 꿈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상을 달려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 ‘해리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여섯 번째 경기: 110m 장애물경기(허들)

이쯤 되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친다. 허들은 나에게 어려운 종목 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데미안(판암선수권 10종 경기 챔피언)에게 강한 종목이었기에 더 힘든 경쟁을 예상했다. 나는 큰 욕심을 내지 않고 그에게 최대한 가까워지는 것을 목표로 달렸다.

일곱 번째 경기: 원반던지기

포환던지기와 비슷한 원반던지기는 꽤 혹독한 훈련을 했다고 생각했다. 45m를 목표로 삼은 후 그 숫자를 자꾸 되뇌었다. 원반던지기는 다른 선수들도 잘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실수를 하면 아쉬운 점수 차이로 메달을 빼앗길 테니. 나는 첫 세트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등수를 유지할 만큼을 던졌고, 자신감이 붙어 마지막 세트에 43.34m의 성적을 냈다.

여덟 번째 경기: 장대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만큼은 자신이 있었고, 잘 뛸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세계기록범위인5.20m~5.30m 사이만큼은 뛸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종목을 거친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장대높이뛰기는 10종 경기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종목이다. 이쯤에서 느끼는 통증, 피로, 열은 그 어떤 스포츠 음료로도 해갈되지 않는다. 많은 선수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부상을 입거나 한계를 느껴 포기하며, 선수들 모두 자신이 지쳐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5.30m 장대로 날아올라 착지했을 때, 아킬레스건에 문제가 생겼음을 느꼈다. 점프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발이 착지 후 걸을 때마다 아팠다. 다시 뛴다면 몸을 사렸을까? 부상을 입었을까? 부상을 입는다면 그때보다 심할까? 이후 해리와 아내 브라이엔과 이 경기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리 심한 통증의, 최악의 상황이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약해져 더 힘들게 느낀 것으로 결론지었다.

아홉 번째 경기: 창 던지기

세계기록(WR)의 시간이다. 내가 어떻게 뛰어서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리에 누우면 30초 안에 잠이 들 수 있을 정도의 피로와 극도의 한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2년 동안 1,500m와 10종 경기를 완주하지 못했던 이유기도 했다. ‘64m 이상’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수없이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해왔던 종목이다. 남은 힘까지 불태워야 했다. 날 듯이 뛰어올라 있는 힘껏, 그리고 멀리. 내 손의 긴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마지막 경기: 1,500m 달리기

사실 간단한 종목이다. 달리거나, 달리지 못하거나. 내 무릎과 다리가 1등일지, 2등일지, 혹은 좌절할 것인지 내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2번째 바퀴까지 2등만 유지하자. 마지막 바퀴에서 1등으로 치고 올라가는 거야’라고 수 천 번 되뇌었다. 결승선 500m 전부터 고비였다. 생각보다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결승선을 400m, 300m, 200m, 100m 앞둘수록 ‘할 수 없어, 끝났어’ 등의 절망과 ‘갈 수 있어!, 가족들과 팬들이 나를 믿고 지켜보고 있어, 조금만 더!’ 등의 희망이 수없이 교차했다.

한편 이튼은 10종 경기에서 ‘마의 벽’으로 여겨졌던 9,000점을 돌파해 세계 육상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유일하게 세계기록을 작성한 선수라는 프리미엄까지 누리게 됐다. 이튼은 IAAF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지난달 27일 “운동선수로서 볼트나 크리스천 테일러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올해 나의 장점을 잘 드러나게 설계하고, 표현한 것을 좋게 평가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채윤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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