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3년간 자식 없던 큰아버지에게 입양
12년 뒤 친아들 탄생에 호적 친부로 옮겨
결혼식 혼주도 양부모.. “존재 인정 받고 싶다”
1, 2심서는 패소 “관계 유지할 뜻 없었던 듯”
가문 종손을 중시하던 시절에 큰 아버지의 친아들로 등록했다가 파양(罷養)을 겪은 50대가 뒤늦게 큰 아버지를 상대로 “내가 양자임을 인정해 달라”고 1년 넘게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19년간 큰 아버지의 아들로, 이후 친부모의 아들로 살아온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를 고민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모(50)씨는 지난 해 9월 큰 아버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도(86)씨 부부를 상대로 양친자 관계가 존재함을 확인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1ㆍ2심 모두 “양친자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그는 불복해 상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1965년 태어난 해에 큰 아버지의 아들로 출생 신고가 됐다. 문중의 장손으로 당시 36세였던 큰 아버지가 결혼 13년 동안 자식이 없자 가문의 어른들이 권해서 이루어진 것. 그러나 12년 뒤인 1977년 큰 아버지에게 친아들이, 2년 뒤 차남이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에 김씨의 친부는 1983년 “형의 첫 아들은 친아들이 아니다”며 형과 아들을 상대로 법원에 심판(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을 청구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김씨 대신 친모가 특별대리인이 됐다. 법원의 확정 판결로 이듬해 김씨는 큰 아버지 호적에서 빠져 친부 쪽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김씨는 유년기와 성장기를 큰아버지 부부를 부모로 여기고 지냈기 때문에 친부모와 왕래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양된 지 31년이 흘러서야 김씨가 소송을 낸 이유는 뭘까. 김씨는 2009년 생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빈소에서 극심한 혼란감과 자괴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지인들이 큰 아버지 부부를 자신의 부모로 알고 있어서, 생모의 사망 소식도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 당시 상주도 친동생에게 넘겨주는 처지였다. 김씨는 “결혼 전까지 큰 아버지 부부를 ‘부모님’이라 부르며 함께 살았고, 내 결혼식에도 양부모가 혼주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친부모와 양부모 쪽 어디에도 쉽게 속할 수 없는 내 존재를 고민한 끝에 결국 그래도 양부모의 자식임을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큰 아버지 소유의 여러 회사에서 15년간 근무를 했고, 신혼집도 양부모가 사줬다.
그러나 1심은 “과거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판결은 양친자 관계가 있다는 주장까지 차단하는 효력이 있다”며 기각했다. 2심은 “과거 심판 이후에도 양친자 관계로 살았다거나 큰 아버지가 그 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있었다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큰 아버지가 호적 정리 뒤에도 김씨와 같이 살고 도와준 것은 재력가로서 형편이 어려운 동생들과 그 조카들을 도와준 차원이라는 판단이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이제 와서 다시 법적 양자로 인정 받겠다는 것은 (재산 상속 등)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대법원 판례상으로는 양부모와 양자 간의 친생자 관계 부존재 소송 결과라면 파양이 인정되지만, 김씨의 경우처럼 제 3자인 친부가 제기한 심판 결과로 파양이 인정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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