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2월 21일
크로스워드(십자말) 퍼즐이 102년 전 오늘 등장했다. 말이란 게, 생각을 갖고 하는 말이라면 사실 그 자체로 낱말 맞추기인 셈이니 그 유래는 언어의 기원에 닿아있다고 해도 좋겠다. 퍼즐 형태의 낱말 맞추기 흔적이 폼페이 유적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그걸 현재의 가로세로 칸 위에 빈 칸까지 두고 이어 푸는 방식으로 만든 이는 영국 출신 미국인 아서 윈(Arthur Wynne, 1871~1945)이다. ‘뉴욕 월드’라는 신문사에서 일하던 그는 1913년 12월 21일자 일요판 ‘오락(Fun)’ 섹션에 다이아몬드 형태의 크로스워드를 선뵀다. 그가 붙인 이름은 ‘워드 크로스 퍼즐’이었는데, 얼마 뒤 식자공의 실수로 ‘크로스 워드’로 인쇄된 신문이 발행됐고, 그게 더 널리 쓰여서 아예 이름이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처음부터 호응이 크진 않았던 듯하다. 100주년이던 2013년 가디언이 전한 바에 따르면 1924년 갓 탄생한 미국 뉴욕의 출판사 ‘사이먼& 슈스터’가 한 책에다 독자 서비스로 크로스워드 퍼즐 부록을 달았는데 그게 인기를 끌면서 급속하게 대중화됐다고 한다. 이듬해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크로스워드 퍼즐란을 신설했고, 1년여 뒤 맨체스터 가디언 등 여러 신문들이 가세했다.
크로스워드 퍼즐은 한국에도,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꽤 두터운 소비층이 존재했다. 버스나 역 대합실 매점 진열장 전면에 퍼즐 집들이 꽂혀 있었고, 그럴싸한 단행본 책자가 정기적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미국에선 지금도 적잖은 신문ㆍ잡지들이 주말판에 크로스워드 퍼즐을 싣는데, 추리소설에서는 시간 죽이는 형사나 사립탐정들이 즐겨 찾는 코너로 써먹곤 한다.
지난 8월 급성 췌장염으로 별세한 멀 리글(Merl Reagle)은, 숨지기 직전까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터’ 등 50여 개 매체에 퍼즐을 연재하며 수많은 팬을 둔 크로스워드의 장인이었다. 그의 퍼즐은 특별했다. 그는 낯설고 어려운 낱말로 정답을 숨기는 대신 위트와 풍자로, 때로는 기발한 언어유희로 독자의 마음을 끄는 데 능했다. 이를 테면 지난 7월 한 퍼즐에서 그는 “가장 유명하지 않은 요리책”이란 힌트를 제시했고, 정답은 “앵무새 굽기(To Grill a Mockingbird)”였다고 한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의 패러디로, 당시는 하퍼 리의 후속작이 화제와 논란을 빚던 때였다.
영민한 형사들이 크로스워드 퍼즐에 목을 멘 의문(?)이 그렇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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