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시간은 9분이었지만 존재감은 90분 그 이상이었다. 올 시즌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고전하던 이청용(27ㆍ크리스탈 팰리스)이 시즌 첫 골을 터트리며 강한 존재감을 뽐냈다.
이청용은 20일(한국시간) 영국 스토크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1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7라운드 스토크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경기 종료 9분 남겨두고 교체 투입된 뒤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청용의 골로 4경기 무패행진(3승 1무)을 달린 크리스탈 팰리스는 리그 6위(9승 2무 6패ㆍ승점 29)를 유지했다.
이청용에게 이번 득점은 올 한 해의 설움을 날릴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올 시즌 EPL 1호 골이자 2011년 4월9일 볼턴 원더러스 시절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EPL 1,716일 만의 일이다.
이날 이청용은 1-1로 팽팽하게 맞서던 후반 36분 윌프레드 자하(23ㆍ코트디부아르)와 교체 돼 경기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열린 뉴캐슬전 교체 출전 이후 22일 만에 그라운드를 밟은 셈이다. 그는 후반 43분 페널티 박스 오른쪽에서 반대쪽 골대 구석으로 강력한 오른발 슛을 날려 결승골을 넣었다. 이날 그의 20m 중거리포는 그간 다소 강도가 약해 ‘소녀 슛’이라고 불렸던 오명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환상적인 슈팅이었다.
올 시즌 이청용은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난 2월 2부 리그인 볼턴을 떠나 크리스탈 팰리스로 이적한 그는 이번 시즌 출전 기회조차 잡기 어려웠다. 팀은 최근 3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며 질주를 이어갔지만 이날 경기 전까지 올 시즌 그가 그라운드를 밟은 경기는 고작 4차례, 출전 시간도 43분에 그쳤다. 그나마도 선발이 아닌 교체선수로 나선 것이 전부다. 주전경쟁에서 밀린 그는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고 대기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앨런 파듀(54) 크리스탈 팰리스 감독은 “이청용 같은 선수들의 분발이 필요하다”며 그의 이름을 콕 집어 이야기 하는 등 팀 내 입지도 좁아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결승골로 이청용은 팀과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파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오늘 그의 골로 아시아 사람들이 밤잠을 다 깼을 것”이라며 “오늘 모습을 보면 이청용이 확실히 깨어났음을 알 수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청용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프리미어리그에 온 이후 최고의 골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국가대표팀 핵심 자원인 이청용이 자신감을 찾으면서 울리 슈틸리케(61ㆍ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의 고민도 한층 가벼워질 전망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청용의 출전 시간 부족에 대해 “대표팀 소집 때 이청용에게 ‘소속팀에서 비록 주전으로 뛰지 못하더라도 대표팀에 올 자격이 있다는 것을 경기장에서 입증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축구전문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이날 이청용에게 평점 7.6점을, 스카이스포츠는 평점 7점을 부여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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