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거제도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대선이나 연방의원 선거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았고, 시민권자라도 사전에 스스로 투표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이는 먹고 살기 힘든 소수계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주로 지지하는 민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통설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민주당 지지성향의 언론은 수시로 공화당이 장악한 지방정부가 소수계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를 가로막는 입법이나 규칙을 내놓고 있다고 보도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조지아와 웨스트버지니아 주 등 총 8개 주에서 선거당일 투표가 힘든 유권자를 위한 사전투표 기간을 대폭 축소하는 입법이 이뤄졌다. 그 결과 8개주 대부분에서 공화당 의석수가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반대 쪽에서는 다른 목소리와 지적이 나온다.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미국 선거제도가 민주당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은 아니며, 민주당이 거꾸로 구조적 혜택을 누리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대표 사례로 435석으로 정해진 연방하원 의석을 각 주에 할당하는 기준을 지목한다.
미국 연방하원 의원은 임기가 2년이며 선거가 실시된 다음 연도 1월3일부터 공식 활동이 시작된다. 연방하원 의석 수는 1929년부터 영구적으로 435명으로 고정되어 있다. 435석을 미국을 구성하는 50개 주에 배정하는 기준은 이렇다. 우선 최소 1명의 하원의원이 배출되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의석은 인구비례에 따라 각 주에 할당토록 하고 있다. 헌법에 의해 각 주는 적어도 1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최초의 50석은 이에 따라 결정되며, 나머지 385석은 균등비례방식으로 결정된다. 균등비례방식이란 각 주 할당인구에 [1/n(n-1)] (n은 각 주의 의석수)을 곱하여 그 값(우선치)이 큰 순서에 따라 각 주에 의석을 할당하는 방법이다.
수도 워싱턴시, 버진제도, 괌, 미국령 사모아에서는 2년 임기로 선출되는 대의원과 푸에르토리코에서 4년 임기로 선출되는 1명의 보호령 대표가 있지만 이들 5명은 하원 토론에는 참가할 수만 있다. 위원회를 제외하고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
의석수 배분 기준 논쟁의 핵심은 150여년전 헌법에 추가된 기준이 시대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느냐 여부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6년 추가된 이 조항은 ‘10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조사 결과를 반영해 주 별 의석 수를 할당하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인구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 시민권 여부와 상관없는 단순 거주자이다.
당시에는 대부분 미국인이 유럽ㆍ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였고 지금처럼 ‘불법 이민자’라는 개념 조차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보수 진영의 지적이다. ‘불법 이민자’ 숫자를 포함시키면 이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 의석수가 많이 배정되는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보수 진영의 이 같은 지적은 과학적 분석으로도 검증되고 있다. 주별 연방하원 의원을 배정하는 공식에 ‘거주 인구’ 대신 ‘시민권자’를 넣어 대입하면, 상당한 변화가 확인된다. 정치 전문매체인 폴리티코에 따르면 아메리칸대 레오나드 스타인혼 박사가 50개주의 시민권자를 추산해 계산한 결과, 민주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캘리포니아 주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정 의석이 현재보다 5석이나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역시 민주당의 텃밭인 뉴욕과 워싱턴 주도 각각 1석이 감소하는 반면,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텍사스와 플로리다의 의석 감소는 각각 2석과 1석에 그쳤다.
이렇게 줄어든 10개 의석은 불법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지 않은 중서부 농촌지역으로 재분배된다. 아이오와, 인디애나, 루이지애나, 미시간, 미주리, 노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펜실베니아 주 등인데 중립주로 분류되는 아이오와 주를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은 공화당이 강세이다.
결과는 다소 다르지만, 중립적 성향의 미 의회조사국(CSR)도 민주당 성향지역에서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의 의석 이동을 예상하고 있다. 올해 개원한 114대 연방하원의 지역구 분포를 2013년 현재 미국 시민권자 인구로 재계산하면, 캘리포니아 주에서 4석, 텍사스와 뉴욕, 플로리다 주에서 각각 1석씩 감소한다. 반면 루이지애나, 미주리,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오클라호마와 버지니아는 1석씩 연방 하원의석이 증원돼야 한다.
미국 보수진영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투표가 아닌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선출되는데, 연방하원이 많은 주일수록 배정되는 선거인단의 규모가 커진다. 폴리티코도 ‘불법 이민자가 힐러리를 뽑을 수 있다’는 제하의 분석기사에서 “선거인단이 주 별 하원 의석수에 비례해 결정되는 바람에 현재의 선거제도 아래서는 1,100만명 혹은 1,200만명으로 추정되는 불법 이민자가 그 존재만으로 대선에서 민주당을 돕게 된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시민권자’ 기준으로 선거인단이 배정됐다면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 밋 롬니(203명)가 선거인단 6명을 더 확보하고 버락 오바마(332명) 대통령은 6명을 잃게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 재선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겠지만, 박빙 구도였다면 대세를 가르는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쯤 되자 공화당과 보수진영에서 문제의 규정을 바꾸려 움직이고있다. 하지만 배분 규정이 150년이나 된 전통을 자랑하고 헌법에 명시된 만큼 실제로 이를 개정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 CRS도 세 가지 대안을 소개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는 크게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 CRS는 우선 헌법을 바꾸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또 헌법 수정이 어렵다면, 선거구를 획정이나 의석 배정 공식을 손질해 민주당과 공화당 성향 지역으로 배분되는 의석이 ‘시민권자’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와 유사하게 바꾸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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