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공동조사단의 주한미군 탄저균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주한미군이 지난 4월 탄저균을 반입할 때 페스트균 샘플도 함께 들여온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탄저균 실험은 애초 해명과 달리 한 차례가 아니라 16차례였음이 드러났다. 거의 모든 실험은 수도 서울 한복판인 용산기지에서 했다고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치명적인 실험이 빈번이 진행됐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논란은 미국의 민간연구소에서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 샘플을 한국의 오산기지 등 세계 각지에 보냈다고 미국 국방부가 알려와 불거졌다. 만약의 사태를 우려해 미국측이 실토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정부는 국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당시 주한미군은 “이번 실험 훈련은 최초로 실시된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마저 거짓으로 드러났다. 탄저균 실험이 수 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진행됐는데도 주한미군은 이를 숨겨온 것이다. 우리의 가장 우방인 미국이 축소 은폐와 거짓말까지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공동조사단 발표 내용도 미국 측 제공자료에 의존한 것이어서 의혹이 남는다. 미군이 보안을 이유로 공개를 제한해 배달 시점과 탄저균 양 등 세부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생물방어능력 향상을 위한 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의 독성물질이 15종이 넘는다는 점에서 탄저균과 페스트균 외에 다른 독성물질이 반입됐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이미 샘플을 폐기하는 바람에 확인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ㆍ미 양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의 권고안을 승인했다. 향후 주한미군이 샘플을 반입할 때 우리 측에 샘플 종류와 분량, 배달 방법 등을 통보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에 미흡하다. 주한미군은 통보만 하면 될 뿐 우리 당국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합의문은 권고안에 불과해 강제성도 없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평등한 시스템은 한ㆍ미 동맹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생물학 무기 실험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다. 북한의 생물학 공격에 대한 대비라지만 국민 생명보다 앞설 수는 없다. 국내에서 생물학 실험이 계속 진행되려면 우리 정부가 실험의 안정성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ㆍ미 간에 관련 정보가 한 점 누락 없이 공유돼야 한다. 양국 전문가가 상시적으로 실험을 검증하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더는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주권 국가로서의 올바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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