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이 겁나서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보수수구세력에 악용될 위험이 있더라도 진보개혁세력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면 그냥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갑작스러운 암 판정으로 지난해 타계한 고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유고집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창비)는 진보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이면서도 치열하게 진영 내 도그마와 경직성을 비판해온 고인의 고뇌와 사유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블로그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에 쓴 글들을 김기원추모사업회가 주제별로 뽑아 엮었다. 고인은 당초 일제 귀속재산 분석으로 재벌자본의 뿌리를 드러낸 박사학위 논문이자 저서 ‘미군정기의 경제구조’의 집필을 필두로 참여연대,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경제발전학회, 서울사회경제연구소 등에서 적극 활동하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4부로 구성된 책은 각각 경제민주화, 노동운동의 쟁점, 한국 정치사회계의 이슈, 통일의 지향점 등을 화두로 한 고인의 글을 담았다. 그는 곳곳에 만연한 갑을 관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복지 확충 등을 강조했다.
“파견제와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해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 예컨대 오른쪽 타이어를 끼우는 정규직에 비해 왼쪽 타이어를 끼우는 비정규직의 월급이 반쯤밖에 안 되는 현실은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할 것입니다.” (105쪽)
무엇보다 고인이 공을 들이는 것은 진보진영의 각성을 촉구하는 일이다. “한국의 진보파들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 전술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그는 진보진영을 향해 시종일관 더 치열하고, 보고, 배우고, 성취해달라고 주문한다.
“대부분의 진보개혁파 지식인들이 고려하지 않는 것이 ‘세금의 정치학’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증세를 좀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 많은 진보파들이 북유럽의 고부담-고복지를 주창합니다. 그런데 제가 견문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정치적으로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한국의 연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44~46쪽)
정원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간행사에서 “평소 귀찮다고 휴대전화도 쓰지 않던 고인이 블로그를 시작한다고 할 때 좀 의아했는데, 우리 사회에 대해 더 자유롭게 발언하고 싶다는 뜻이었다”며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그의 블로그를 방문해서 나머지 글들도 일독할 것을 권한다”고 썼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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