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세대, 올해 고려대 탈락
아들보다 못한 선수들은 합격
비리 커넥션에 끼지 않은 탓
합격했던 학교조차 못 다녀
공정한 선발 기대하며 3수 준비”
“올해도 대학 두 곳에 원서를 냈는데 또 떨어졌네요. ‘커넥션’ 없는 고교야구 선수에게 입시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하는 중입니다.”
고교 ‘4할 타자’ 홍승우 선수의 아버지로 경찰의 ‘고교야구 대입 비리’ 수사를 촉발시킨 홍창기(48)씨는 15일 덤덤한 얼굴로 아들의 근황을 전했다. 지난해 서울고 소속으로 타율 4할2푼9리를 기록한 홍 선수는 같은 해 연세대 등 6개 대학에 원서를 냈다가 3곳에서 탈락했고, 나머지 학교로부터는 입학포기 압박을 받았다.
한 차례 쓴 맛을 본 홍 선수는 올해 고려대와 서울대에 입시 원서를 냈지만 다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서울대의 경우 수능 표준점수 1점 차이로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낙방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 쳐도 고려대는 얘기가 달랐다. 인천 부평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홍씨는 “아들과 같은 포지션의 S고 출신 선수가 합격했는데 성적은 2할6푼8리에 불과하고 개인상 수상 경력도 전무하다”며 씁쓸히 웃었다.
4할을 치고도 연세대 입시에서 떨어진 홍 선수의 사례는 현재 경찰 수사의 중심에 있다. 이 일로 서울 시내 대학 야구부 감독과 고교 감독, 서울시야구협회 관계자들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홍씨는 “아들의 대입 준비를 겪으며 아마 야구판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는 확신을 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야구특기생들의 채점표를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령 고교 성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기실적증명서에서 평가위원 3명은 홍 선수에게 96점(120점 만점)을, 다른 4명의 선수에게 100점이 넘는 점수를 줬다. 이들의 고교 3학년 타율은 2할5푼~3할2리로 홍 선수 기록에 크게 뒤진다.
야구특기생 선발절차가 경쟁공모 형식은 갖추고 있으나 실제로는 철저히 사전 내정 방식으로 운영되는 구조적 문제가 이번 비리의 핵심이라고 홍씨는 말한다. 그는 “고3 선수 학부모 사이에선 ‘누가 얼마를 주고 입학하기로 했다더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간다”고 말했다.
홍씨는 대입비리가 ‘고교 감독-협회-심판장’으로 이어지는 물밑 네트워크를 통해 치밀하게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교 감독과 서울시야구협회 관계자가 특정 선수를 밀어주기로 결심하면 그 선수가 뛰는 경기에 자신들 라인의 심판장을 배치하고, 심판장은 다시 입맛에 맞는 심판을 배정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커넥션에 끼지 않은 선수는 철저하게 배척당한다는 설명이다. 홍 선수는 학교가 제안한 지방대에 원서를 넣지 않고 서울의 사립대를 지원했다가 노골적인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홍씨는 “대학 야구부 관계자들은 ‘입시 원서를 넣은 저의가 뭐냐’ ‘(이미 내정된) 다른 선수를 위해 원서를 취소해 달라’ 등 거리낌 없이 포기를 종용했다”며 “그나마 합격했던 한 학교도 아무런 설명 없이 선수 등록을 말소시켰다”고 전했다.
홍 선수는 현재 운동특기생으로는 이례적으로 3수를 결심하고 내년도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아들이 서울대는 그나마 공정한 선발이 가능하다고 보고 다시 수능을 본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운동만 한 아들이 펜을 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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