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파탄자나 다름 없다. 가족에 대한 존중을 찾기 힘들다. 아내는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듯하다. 자신의 명령을 어겼다고 허리띠로 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아들은 폭군 같은 아버지를 못 견뎌 오래 전 가출했다. 종일 방에 틀어박혀 남 괴롭힐 일만 궁리한다. 딸이 이런 아버지를 ‘개망나니’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한 여자의 남편이자 소녀의 아버지인 이 남자는 천지를 창조한 신이다. 심심해서 자신의 모습을 본 떠 첫 인간 아담을 만들어냈고, 뭔가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보려고 이브도 지구에 보냈다. 집 나가 고생만 하다 죽음에 이른 듯한 아들의 이름은 J. C.(영화 속 누군가는 유명 액션배우 장 클로드 반담의 약자 아니냐고 반문하나 예수를 의미한다)다.
사람들이 헛된 희망을 갖거나 대형 재난으로 숨을 거두게 된 이유도 다 이 남자 탓이다. 마트에서 자기가 선 줄만 계산이 오래 걸리는 등의 각종 ‘보편짜증유발의 법칙’을 개발한 사람도 이 남자다. 그는 사람들을 괴롭히며 지루한 일상을 이겨낸다. 못되고 못된 이 남자가 사는 곳은 벨기에 수도 브뤼셀 어딘가이다.
벨기에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신에 대한 풍자로 가득한 영화다. 누군가는 신성모독 아니냐며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할 만한 설정들을 품고 있다. 발칙하고 위태로운 이야기라 심각한 영화로 여길 수도 있으나 스크린 곳곳에 매설돼 있는 건 웃음 지뢰들이다. 감독의 위트에 탄복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유쾌한 미소를 짓다 보면 진정한 신은 어떤 모습인지, 종교의 옳은 역할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된다.
신의 딸 에아가 아버지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오빠처럼 가출을 결심하며 영화는 본궤도에 오른다. 오빠는 에아에게 6명의 사도만 구하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는 예시를 준다. 에아는 집을 탈출하며 아버지가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해온 컴퓨터 비밀 폴더의 ‘봉인’을 해제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남은 수명을 휴대폰 메시지로 전송한 것이다. 영화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알게 된 사람들과 에아의 사연을 통해 삶과 죽음을 성찰한다.
인간 세상에 이른 에아는 오빠처럼 낮은 곳으로 임한다. 병들거나 가난하고 장애를 지녔거나 외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사도로 삼는다. 어릴 적 팔을 잃어 슬픔에 젖은 젊은 여인에게는 살아가는 의미와 함께 사랑을 선사하고, 성도착증 남성에게는 적성에 맞는 직업과 첫 사랑을 안겨준다. 에아는 그렇게 기적을 행하며 아버지가 빚어낸 세상의 슬픔들을 지워간다.
좁게 보면 도그마에 사로잡힌 기독교를 비판하는 듯하나 시야를 좀 넓히면 가부장적 사회에까지 일침을 놓는 영화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신은 못된 가장의 표본으로 묘사되곤 한다. 집안에선 입술과 손만 까딱이고 가사엔 신경 쓰지 않는다. 자녀 교육도 위압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가부장이 창조한 세상은 끔찍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원제는 ‘The Brand New Testment’다. ‘새로운 신약성서’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에아가 새 사도들과 만들어가는 행적이 담긴 내용이라는 뜻이다. 국내 개봉 제목은 당초 ‘신은 브뤼셀에 산다’였으나 지난달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하며 지금의 제목으로 급히 바뀌었다. 브뤼셀에 과격파 무슬림이 많이 살고 있는 사실이 널리 퍼지면서 오해의 소지를 살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을 풍자한 영화가 비뚤어진 방식으로 신을 숭배하는 자들 때문에 수난을 겪은 셈이다. 이 영화의 감독 자코 반 도마엘은 이런 수난을 예감한 것일까. 자살폭탄테러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착각하는 종교 맹신자를 조롱하는 듯한 짧은 영상을 엔딩 크레딧 뒤에 숨겨 놓았다. ‘토토의 천국’(1991)과 ‘제8요일’(1996), ‘미스터 노바디’(2009)를 통해 빼어난 영상미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관객들에게 기쁜 감동을 안겨줬던 도마엘 감독의 재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24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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