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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슬픔의 대위, 아픔의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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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슬픔의 대위, 아픔의 화성

입력
2015.12.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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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만드는 건 의외로 쉽다. 화성이나 대위법에 대한 지식 따위 없어도 된다. 그럼에도 아무나 만들 순 없다. 화성과 대위에 통달한 자가 만든 노래라도 매번 사람 마음을 흔들 수는 없다. 해놓고 보니 아리송한 말이긴 하다. 최근 몰두해서 노래를 몇 곡 만들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노래에 대한 열망만으로도 불가능하고, 이런저런 학원 같은 데서 기술을 익힌다 하더라도 내 안에서 정말 내고 싶은 소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해내는 건 전문 뮤지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대개의 사랑 노래는 이별 후에 나온다. 또는, 그에 준하는 고통에서 자연발생하다시피 만들어진다. 그 소리가 어떤 이에게 아름답고 슬픈 울림을 줄 수 있는 건 그걸 만들 당시의 기분이 소리 속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건 어느 특수한 이의 개별적인 아픔이 아니다. 소리 공명은 상황과 기분에 따라 각기 다른 반향을 갖지만, 어떤 근원적인 슬픔과 아픔에서 터지는 소리는 그 어떤 개념이나 기술에 의한 조작이 불가능하다. 인간 보편의 육체적 감화 안에서 생성되어 스스로 옷을 입는 소리의 율동. 밥 말리는 “노래의 시작이 울음”이었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울 수 있다. 그래서 작곡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 담아 솔직하게 울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그러므로, 노래를 만드는 건 도무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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