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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헐값 유통에… 직거래ㆍ홈쇼핑 두드린 ‘음악 보부상’

입력
2015.12.14 20:00
수정
2015.12.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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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 들으면 가수에 0.12원… 불합리한 음원사이트에 온몸 저항

제이통, 소비자 만나 CD팔고 루시드폴은 홈쇼핑서 앨범 등 유통

지난 6일 홍대의 한 타투(문신)숍. 부산에서 활동하는 래퍼 제이통(27·이정훈)은 ‘福(복)’이란 글자가 쓰인 주머니에 CD를 담아 구매자에게 건넸다. 자신의 사이트에 구매 의사를 밝힌 소비자와 만나 직접 CD를 파는 그는 스스로를 “음악 보부상”이라고 부른다. 제이통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흥미롭고, 여러 지역을 떠돌아 다니며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며 직거래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무분별하고 값싸게 소비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벅스 등 음원사이트와 핫트랙스 같은 음반 매장에서 자신의 노래를 유통하지 않는다. “내 음악의 가치는 내가 매기겠다”는 것이다. 음반 직거래로 제이통은 5~6일 이틀 동안 16장의 CD를 팔았다. “소수라도 내 음악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다”며 그는 틈틈이 전국 각지를 돌며 음반을 팔러 다닌다.

거스를 수 없는 디지털 음원 유통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뮤지션들이 있다. 창작의 대가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헐값 음원 유통에 대한 저항이다. 음원사이트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창작의 산물을 공짜나 다름 없는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월 6,000원 정도를 내면 음원 사이트에서 무제한 스트리밍을 즐길 수 있는데, 많이 들을수록 단가가 떨어지는 구조여서 사용자가 한 곡 들을 때 가수에게 떨어지는 대가는 평균 0.12원이다. 음원 서비스 업체들이 음원 가격을 후려쳐 애초 판매가격이 미국 등의 절반 수준인데다, 수익 분배 비율도 창작자보다는 유통사 중심으로 왜곡된 탓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음악사용료 징수 규정’에 따르면 음원 서비스(유통·배급) 업체가 총 수익의 48.8%를 가져가고 실연자(가수·연주자)에게는 6%만 돌아간다. 해외 뮤지션들도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에 적극 저항하고 있다. 영국 팝스타 아델은 지난달 낸 새 앨범 ‘25’를 어떤 음원사이트에서도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을 수 없도록 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25’ 음반은 발매 3주차인 이달 둘째 주에 미국에서만 판매 500만장을 돌파했다. 2000년 들어 한 해 음반 판매량 500만 장을 넘어선 가수는 지난 2004년 ‘컨페션스’로 790만장을 팔아 치운 어셔와 아델 뿐이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40·조윤석)은 이례적으로 홈쇼핑 음반 판매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난 11일 오전 2시 CJ 오쇼핑 채널에서 생방송으로 직접 재배한 귤 1㎏과 앨범을 세트로 판매하는 ‘귤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했다. 방송 9분 만에 7집 ‘누군가를 위한’을 1,000장 팔아 치웠다. 마종기 시인과 책까지 내며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스위스 공학 박사 출신의 음악인이 얼굴에 귤 모양 탈을 쓰고 홈쇼핑에서 앨범을 판매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곡을 하나씩 쪼개 들어서는 앨범 전체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팬들에게 ‘풀코스’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루시드폴 소속사 안테나뮤직의 정동인 대표는 “온라인 음원으로 쪼개서 소비하기엔 앨범에 더 많은 얘기들이 있어 CD 판매에 갈증을 느끼게 됐다”며 “지난해 결혼 후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루시드폴이 앨범과 현지에서 직접 기른 귤을 함께 나누며 자신의 삶 자체를 팬들과 공유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아예 CD를 내지 않는 ‘반(反)디지털’ 추구 음악인까지 등장하고 있다.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 밤신사는 1집 ‘실화를 바탕으로’를 22일 카세트테이프로만 발매한다. 내년 3월 LP로도 낼 예정이지만, CD는 발매하지 않는다. 2005년 데뷔한 밴드 불싸조도 내년 상반기 공개 예정인 4집을 테이프와 LP로만 낸다. 밤신사의 음반을 제작하는 비트볼 뮤직 이봉수 대표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확산되며) CD는 매체로서 생명력이 다해가고 있다”며 “차라리 LP와 테이프가 소장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이프와 LP로만 곡을 유통하는 한 음악인은 “MP3는 곡을 건너뛰면서 대충 듣는 경향이 있어 내 곡이 MP3로 돌아다니는 게 싫다”며 “수 백 명이 스트리밍으로 대충 듣는 것보다 적은 수라도 내 음악을 제대로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반 디지털’ 바람은 세계 음악시장에 이미 확산되고 있다. 미국 음반판매 집계기관인 닐슨 사운드스캔에 따르면 2014년 LP판매량은 920만장으로, 2013년보다 52%나 증가했다. 이 기관이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음악팬들이 소장을 위해 LP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트렌드코리아 2016’에서 언급한 ‘연극적 개념 소비’와 맞닿아 있다. 연극적 개념 소비란 공정거래 등 가치 있는 소비, 차별화된 소유 등을 과시하는 움직임을 말하는데, 수익 배분에 논란이 있는 음원보다 LP로 음악을 듣는 게 더 가치 있는 음악 소비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경향은 복고주의의 유행과 함께 착한 소비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하와얼굴들을 배출한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는 “CD는 들을 기회가 없고 음원은 너무 싸다”며 “소장 가치가 있는 LP야말로 특히 인디음악인들의 미래”라고 전망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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